오늘도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피아노 앞으로 갑니다. 사실 새벽에는 피곤하고, 춥고, 귀찮아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도 일단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사실 누구 앞에서 연주할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열심히 피아노를 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이 나를 살립니다. 절대자 앞에 홀로 서는 이 시간, 목적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대한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회복시킵니다. 그 속에서 기쁨이 임하고 평안이 임하고 삶의 생기가 다시 살아납니다.
그동안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의정부로 이사 와서 3년 동안 피아노를 꼼꼼하게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출산을 앞두고 학원을 그만두셨습니다.
한 달 전, 두 아이와 저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습니다. 두 아이는 더 이상 피아노를 배우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피아노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실용음악학원을 하는 지인이 있어
그곳에서 피아노와 기타를 함께 배우고 있습니다. 그분은 저를 배려해서 무료로 가르쳐 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절반이라도 레슨비를 내고 여전히 악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 후 기타는 손을 거의 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기타도 피아노도 잘 친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특히 피아노를 잘 친다고 말씀해 주셨을 때
괜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스물여섯부터 마흔넷까지 혼자 연습실에서 연습하던 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들이 칭찬 한 마디에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실용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들은 대부분 돈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교회에서, 가정에서, 세상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자립이 없으면
내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지키며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늘 경제적인 독립을 생각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우연일까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가난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도 그랬고, 김영갑 작가도, 이해인 수녀도 그랬고, 백석도 윤동주도 그랬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저는 과할 정도로 부자라 늘 부끄럽습니다.
집 없는 세 아이의 아빠인 저는 마음만 먹으면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도 피아노 앞에 섭니다. 건반을 누르고 기타를 연주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위로와 평온, 힘과 생기를 얻습니다. 그 힘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갑니다.
요즘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급해질 때도 있습니다. 아내는 이제 이상을 좀 내려놓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여전히 이상을 찾습니다. 거창한 것을 꿈꾸지는 않습니다.
그저
나의 삶을 소박하게 완성하는 것.
그리고
내가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한 사람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