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작가,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사랑하는 딸 은비야, 2026년에도 봄이 이렇게 어김없이 왔구나. 누군가는 자신의 삶에 봄을 몇 번이나 볼 수 있겠냐고, 봄이 오면 아낌없이 꽃의 향연에 물들고 싶다고 하더라.
오늘 아빠가 은비에게 전하고 싶은 시집은 이해인 수녀님의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이란 시집이야. 아빠가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시가 그분의 내면처럼 맑고 투명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한편으로 수녀님의 시를 읽을수록 이런 생각도 들어. 이해인 수녀님의 시는 소녀처럼 맑고 고와서, 아빠의 내면의 결과는 조금 다르다는 그런 이질감. 아빠에게 삶은 때로 외롭고, 쓸쓸하고, 차갑고, 고독하게 느껴질 때가 많거든.
하지만 이해인 수녀님은 솔방울 하나에도, 바다의 조개 하나에도, 새소리와 꽃망울 하나에도 아이처럼 기뻐하는 분이야. 그래서일까, 마음이 메마른 날에 그분의 시를 읽고 있으면 조금씩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끼게 된단다.
이 시집은 이해인 수녀님이 암 투병 중에 쓴 시들이 담겨 있어. 그중 한 구절이 아빠 마음에 오래 남았어.
“병원에서 나의 소망은 / 나날이 작아지고 있네 / 그저 숨을 쉬는 것만도 감사하면서 / 겸손해지지 않을 수가 없네” (‘병원에서‘ 중에서…)
이 짧은 고백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지 문득 돌아보게 된다.
지금도 병원에는 작은 소망 하나를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단다. 숨을 쉬는 것, 하루를 버티는 것, 그것만으로도 간절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살아가. 아빠도 그렇고 말이야.
우리는 참 어리석어서 인생의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과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계절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
그래서 아빠는 인생을 살아가는 두 가지 지혜를 생각해 보곤 해. 하나는 지금 이 순간을 선물처럼 받아들이며
기쁘게 살아가는 지혜이고, 또 하나는 인생의 마지막을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야.
아빠는 돌아보면 봄을 봄답게, 여름을 여름답게 살지 못했던 것 같아. 예기치 못한 태풍 같은 일들이 찾아와서 10대와 20대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거든.
그래서 아빠는 너희들이 10대와 20대에 누릴 수 있는 그때의 기쁨을 더 만끽하면 하는 바람이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는 늘 한 장면을 보게 돼. 집 앞 사거리에는 어린이집과 요양원이 나란히 서 있지. 시작과 끝이 한 길 위에 함께 놓여 있는 풍경이야.
새로 시작하는 봄 같은 아이들,
그리고 긴 여정을 마친 겨울 같은 노인들
그 두 세계를 바라보며
아빠는 생각하게 돼.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은비야, 어제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친구들처럼 남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빠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어. 우리 딸이 벌써 이렇게 자랐구나.
그리고 앞으로 네 삶에 펼쳐질 수많은 이야기들. 사랑과 이별, 노력과 실패, 이상과 현실, 상실과 슬픔. 그래서 아빠는 이 시를 은비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어.
아빠가 이 시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병상 일기 2>란 시에 나오는 구절이야.
“무너지지 말아야지 / 아픔이 주는 쓸쓸함을 / 홀로 견디며 노래할 수 있을 때 / 나는 처음으로 / 삶을 껴안는 너그러움과 / 겸허한 사랑을 배우리“
참 멋진 말이지만,
참 어려운 고백이다. 그렇지!
사랑하는 은비야, 아빠는 네가 기쁨만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쓸쓸함과 아픔까지도 자기 삶으로 끌어안고, 그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인생은 밝은 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거든. 햇살과 함께 때로는 먹구름이 지나가고, 비도 내리고, 바람도 불어.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만들어 간단다.
그 모든 시간을 도망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결국 그 시간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 아빠는 네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한다.
2026년 3월 27일. 어느 봄날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