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트

: 삶의 온기를 주는 위로의 공간

by 오승현

목포에서의 다섯 해(2019–2023).

내 삶을 지탱해준 네 개의 아지트가 있었다


첫 번째는 ‘고호의 책방’.

중후한 멋을 지닌 사장님이

고흐를 좋아해 붙인 이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고흐의 삶과 그림이 담긴 책을 집어 들었다.

고흐의 그림, 나무 책장, 큐레이션 된 미술 서적들.

그 풍경은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렀다.

< 산 아래 책방 > (목포 유달산 아래)


두 번째는 ‘산 아래 책방’.

독립책방이 생겼다는 소식에

마음이 설레 용기 내어 들어갔던 그곳은

지금도 내 기억 속 따뜻한 위로의 자리로 남아 있다.

구석진 창가, 나무 의자, 오래된 책 냄새.

그곳은 잠시 숨 고를 수 있는 아지트였다.

시화마을 보리마당 골목길
보리마당에서 보는 목포-제주 여객터미널

세 번째는 보리마당 골목길.

영화 〈1987〉에 나온 ‘연희네 슈퍼’를 지나

골목을 오르다 보면 낡은 판잣집과 전깃줄 사이로

노을빛 풍경이 펼쳐졌다.

작은 벤치에 앉아, 혼자 혹은 아내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우울한 날이면 목포에서 제주로 떠나는

여객선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상상 속 일탈을 꿈꾸기도 했다..

북항바다
북항바다


그리고 마지막은 북항 바다였다.

새벽예배를 마치면 나는 늘 그곳으로 향했다.


어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들로 북적이던 수산시장,

혹은 차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던

고요한 피난처.


바다는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고,

그 광활한 풍경 앞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새삼 깨달았다.


아등바등 살아가던 내가

지구와 대양 위의 작은 점일 뿐임을 인정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평온이 찾아왔다.


삶은 내 뜻대로만 흐르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바다 앞에서 배웠다.


지금도 마음이 흔들릴 때면

그 바다의 냄새가 떠오른다.

비 내리던 날 차 안에서 읽었던 문장이,

그때의 나를 다시 꺼내어 본다.


문득,

기차를 타고 그 모든 기억이 담긴

목포로 떠나고 싶다.

내 삶을 조용히 지탱해 준

아지트가 있는 그 바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