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아들 은율이에게 쓰는 아빠의 편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아빠도 지금의 은율이처럼 9살 즈음이었단다.
그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자주 관악산을 올랐어.
삼막사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힘들었지만,
할아버지가 사준 초콜릿을 품고 한 걸음씩 내디뎠지.
산길을 오르던 아빠를 향해
어른들이 날쌘돌이 같다며 칭찬하던 그 기억,
지금도 마음 한편에 또렷하게 남아 있어.
그날,
절벽 끝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피어 있던
노란 야생난을 아빠가 발견했어.
너무 예뻤단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함께,
조심스레 빈 유리병에 담아 집으로 데려왔지.
하지만…
그 노란 야생난은 오래가지 못했단다.
며칠을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 조용히 죽고 말았어.
그때 알았지.
야생난은 집에서 키우기엔 너무 예민했고,
살아가는 환경이 달랐다는 걸.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데려왔다 해도
그 꽃이 있어야 할 자리는 따로 있었던 거야.
그 후로 우리는
다시는 야생난을 함부로 꺾어 오지 않았단다.
아빠가 이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은율이가 그때 그 야생난을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야.
눈에 띄지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섬세한 아름다움이 살아 있는 아이.
엄마는 늘 말했지.
“은율이는 배려가 깊고, 참 다정한 아이예요.”
아빠는…
그런 너의 섬세함을 자주 놓쳤던 것 같아.
투정이나 서운함으로 받아들였던 순간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안에 얼마나 예민하고 따뜻한 사랑이 있었는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어.
그래서 아빠에게 은율이는
‘사랑으로 잘 가꾸어야 할 난초’야.
함부로 다가가선 안 되는,
고매한 매력을 가진 멋진 아이,
마음을 다해 길러야만 피어나는 꽃.
얼마 전,
아빠가 다리를 다쳐
구급차에 실려 가던 그날 기억하니?
넘어진 아빠를 바라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아빠!”를 부르던 너.
그 목소리에 담긴 떨림과 사랑이
아빠의 마음을 단숨에 울렸단다.
그 순간 아빠는
너의 진심을, 너의 사랑을,
그리고 너의 깊은 내면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느꼈어.
그날 병실로 면회 왔을 때,
하염없이 울던 누나와는 달리
끝까지 참고 꾹 참으며 아빠를 안아주던 너.
하지만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엄마 품에 안겨 서럽게 통곡하며
울었다는 얘기를 듣고,
아빠는 마음 깊이 깨달았어.
앞으로 살아가면서
아빠는,
엄마처럼 너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너의 눈물, 너의 서운함,
그리고 아직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너의 투정까지도
그 속에 담긴 진심을 놓치지 않는 아빠가 될게.
너라는 난초를
사랑으로 잘 가꾸겠다고,
병실에서 아빠는 다짐했단다.
사랑해,
아들 은율아.
(2025. 8. 7 511호 입원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