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안에 공존하는 시와 말씀 그리고 UFC
1. 내 안의 모순
나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고요한 날엔 시를 쓴다.
그런데 동시에,
UFC를 좋아하고
피 튀는 스릴러 영화를 즐겨 본다.
사랑을 말하는 목회자가,
시를 노래하는 사람이,
왜 주먹과 피의 세계에 매료되는가?
나는 오래도록 이 질문과 씨름했다.
2. 어린 시절, 첫 번째 옥타곤
아버지는 권투와 액션 영화를 사랑했다.
작은 방 안, 빌려온 비디오를 틀면
우린 함께 땀을 쥐어짜듯 응원했다.
화끈한 액션엔 환호했지만,
맥 빠진 영화엔 아버지는 늘 실망했고
나는 그 표정까지 따라 했다.
권투 경기를 보거나,
액션 영화를 보고 나면,
나는 이불을 장롱에 쌓아 올리고
이리저리 위아래로 주먹을 날렸다.
그게 내 첫 옥타곤이었다.
몸에 새겨진 감각,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3. 옥타곤, 성소가 되다
얼마 전,
교회 청년부 홍종태 형제(‘찐홍이’선수)가 내게 말했다.
“옥타곤 안에서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성소 같은 순간이 있어요.”
피 묻은 링이 성소라니.
낯설었지만 그 고백이 오래 내 안에 머물렀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내 시집 《가끔 어떤 날》의 제목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경기장에 올랐다.
펀치와 함성 속에서,
누군가의 몸 위에
내 시집의 이름이 함께 싸우고 있었다.
그 장면을 나는 잊을 수 없다.
4. 정직한 공간
한 번은 UFC에서 무명의 선수가
세계 챔피언을 꺾는 순간을 보았다.
‘자본보다 실력이 통하는구나.’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그곳만큼은 정직했다.
그때 종태 형제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옥타곤은 공정함의 공간이자,
하나님과 홀로 서는 성소였다.
5. 모순을 품고 가는 순례
그래서 나는 지금도 묻는다.
시편과 옥타곤,
윤동주의 시와 폭력성,
사랑과 본능—
왜 이 두 세계가 내 안에 함께 있는가.
아직 답은 없다.
그러나 이제 안다.
이 모순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때론 괴롭지만)
내 순례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도,
시를 쓰며, 사랑을 말하며,
조용히 내 안의 옥타곤을 품고 걸어간다.
이 순례 길 위에서
그 언젠가
마주할 답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