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전하는 작은 마음
아버지,
어린 시절 제게 아버지는 ‘회사원’ 그 자체였습니다.
삼십 년 넘게 한 직장에서 묵묵히 일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청춘을 가족을 위해 바치신 아버지의 삶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어릴 적 술에 취해 고함치며 우시던 아버지의 모습도 이제는 다르게 보입니다. 그날들을 탓하기보다, 아버지의 슬픔이 무엇이었을까 헤아리게 됩니다.
5년 전, 어머니 사업장이 부도로 무너지던 날. 아버지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저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속에 깊은 낙심을 겪었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둠 속에서 매일 허우적거렸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말했듯, 끝나지 않는 터널은 없었습니다. 언제나 기둥처럼 곁을 지켜준 누나들과 매형들 덕분에, 이제는 다시 기반을 잡아가는 모습에 안도하게 됩니다.
얼마 전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할아버지의 기일에 올려놓은 흑백 액자가, 유일하게 본 아버지의 얼굴이었다고요.
저도 이제 세 아이의 아빠가 되어보니, 어린 시절 아버지의 슬픔이 조금은 보입니다.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얼마나 품이 그리웠을까요. 그런 아버지를 따뜻이 안아드리지 못해, 참 죄송합니다.
할아버지는 경찰이셨고, 여순사건 때 돌아가셔서 독립유공자가 되셨다고 했지요. 얼마 전 큰아버지께서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시고, 나라에서 아버지께 연락이 왔다 하셨습니다. 이제 둘째 아들인 아버지가 독립유공자의 자녀로서 연금을 받게 되었다고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주는 늦은 선물이 아닐까.”
오래도록 전하지 못한 마음, 조용히 돕고 싶었던 마음이 그 연금 속에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선물이 아버지의 삶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가 아버지를 안아드리겠습니다. 긴 세월 가슴속에 고여 있던 눈물이 제 품에서 쉼이 되기를. 그 눈물이 맑은 강물 되어, 아버지의 길을 따뜻이 적셔주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깨닫습니다. 아마 우리 모두의 아버지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눈물을 삼키며 살아오셨을 것입니다.
그 눈물이 언젠가 자녀의 품에서 위로받기를, 그리고 우리 또한 언젠가 누군가의 삶에 ‘늦게 도착한 선물’이 되기를, 조용히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