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빈 공간
성서 속 사도 바울에게는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한
슬픈 비밀이 있었다.
그는 그 비밀을 ‘가시’라고 불렀다.
바울은 하나님께 그 가시를 거둬달라고
생명을 걸고 세 번 기도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가시를 거두지 않으셨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그 가시는 결국,
바울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도로 만들었다.
나는 사도 바울처럼 위대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도 가시가 있다.
그 가시는 지금도 나를 조용히 옥죄고 있다.
그 가시는,
사람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게 만드는
슬픔의 벽처럼 느껴진다.
그 가시는,
하나님과 나 사이,
사람들과 나 사이에,
조용히 ‘빈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빈 공간이 있었기에,
나는 절대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빈 공간이 있었기에,
나는 외로운 이들을 공감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빈 공간이 있었기에,
악한 내가 더 타락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주셨는지도 모른다.
물론, 빈 공간에 갇히는 날이면 참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가시 같은 빈 공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가시는 지금까지
나를 살려준 존재였을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가시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오늘도..
은혜는 그 가시의 틈에서
여전히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