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머물던 시간
결혼 후, 우리는 제주에서 다섯 해를 살았다.
그때 나는 서른하나, 아내는 스물여덟이었다.
첫째 딸 은비가 백일이 되던 날,
우리는 신혼집을 떠나 제주로 향했다.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모든 익숙함을 뒤로하고
낯선 바다의 섬에 조용히 닻을 내렸다.
그 시절, 우리를 붙잡아준 건
가족의 사랑이었고, 제주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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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제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묻는다면
언제나 서귀포 법환포구를 떠올린다.
이른 새벽,
해가 수평선 위로 떠오를 때
나는 자주 그곳으로 걸어갔다.
저녁노을이 바다를 붉게 물들이면
그 해변에 앉아 조용히 파도를 바라보았다.
그때 알았다.
자연은 그 어떤 말보다
깊은 위로를 건넬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바다는
결코 같은 얼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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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날의 법환포구는
고요한 기도 같았고,
태풍이 몰아치는 날엔
날것의 분노처럼 거칠고 드세었다.
그 시절 우리는
제주의 동서남북 바다를 따라 걸었다.
도시처럼 세련된 느낌의 애월바다,
아이들과 물장구치던 금릉 해수욕장,
에메랄드빛으로 펼쳐진 우도 산호해변,
청춘의 숨결이 묻어나는 월정리,
끝없이 이어진 표선의 백사장까지—
제주의 바다는
각기 다른 이름을 가졌고,
각기 다른 시간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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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섯 해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선물이었다.
바다와 오름, 구름과 숲,
한라산의 숨결이
내 몸과 마음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만약 그 시절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삭막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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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끔,
문득 제주가 그립다.
그 시절, 신혼의 날들을 지나며
어린 은비를 안고 걷던
‘어린 나 자신’이 그립다.
언젠가 다시 그 섬으로 돌아가
그때처럼 새벽 바다를 걷고 싶다.
자연이 주는 위로 속에서
고요히 나를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