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일
손주가 열어 준 또 하나의 삶 (무농)
행복에는 간접 경험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깊이가 있다. 책과 이야기, 타인의 삶을 통해 배울 수는 있지만, 직접 품에 안아 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온기가 있다. 손주의 탄생은 내게 바로 그런 세계를 열어 주었다. 작은 숨결과 여린 손짓, 이유 없이 번지는 맑은 웃음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감동과 감사를 안겨 주었다. 그것은 지나온 세월 위에 조용히 더해진 또 하나의 축복이자, 삶이 건네준 새로운 장(章)의 시작이었다.
주변을 보면 나이가 들수록 SNS나 휴대전화 화면을 손주 사진으로 채워 두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예전에는 그 모습이 다소 과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그것은 과시가 아니라, 삶이 허락한 기쁨을 오래 바라보고 싶은 소박한 애정의 표현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했던 풍경이 공감으로 바뀌는 순간, 나 또한 세월의 또 다른 자리에 서 있음을 느낀다.
돌이켜 보면 자녀를 키우던 시절의 나는 늘 분주했다. 생계를 꾸리고 미래를 준비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넉넉하지 못했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천천히 표현할 시간과 마음의 여백이 부족했다. 세월이 흐르며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고, 그때 찾아온 손주는 내 안의 감각을 다시 깨워 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서두르지 않는 법, 있는 그대로를 지켜보는 법, 그리고 기다림의 가치를 배워 간다.
손주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는 부모였던 시절과는 분명 다른 차분함이 배어 있다. 그것은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세월이 켜켜이 쌓아 준 경험의 결과일 것이다. 기쁨과 실패, 후회와 배움이 겹겹이 더해지면서 타인을 바라보는 눈높이는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 덕분에 판단보다 공감이 먼저 앞서게 되었다. 이제야 깨닫는다. 경험이란 단지 세월의 흔적이 아니라, 사람을 더 단단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부드럽게 빚어 가는 소중한 자산임을.
이제 나는 새로운 만남과 경험 앞에서 조금 더 낮은 자세로 서고자 한다. 손주가 안겨 준 감동과 감사는 단순한 기쁨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새롭게 다듬어 주었다. 그것은 또 하나의 행복이며, 남은 시간을 더욱 겸허하고 따뜻하게 살아가라는 삶의 조용한 가르침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