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처럼, 그러나 단단하게 (무농)

감사한 일

by 나무나루주인

고목처럼, 그러나 단단하게 (무농)


젊은 날에는 나이가 들면 마음도 함께 넉넉해질 줄 알았다. 세월이 흐르면 성급함은 사라지고, 이해와 관용이 저절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 믿었다. 마치 가을이 되면 자연스레 열매가 익듯, 삶도 그렇게 깊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그 시간을 통과해 보니 마음은 생각만큼 순순히 늙어주지 않았다. 이유 없이 가라앉는 날이 있고,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 오래도록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믿었던 관계에서 느끼는 서운함과 기대가 어긋났을 때의 허망함,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가 조용히 스며드는 저녁도 있다. 때로는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분노가 불쑥 올라와 스스로를 당황하게 만든다.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 곧 성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삶은 뒤늦게 가르쳐 준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삶’을 은근히 동경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이란 본래 흔들리는 것임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흔들림을 없애는 대신, 그 안에서 어떻게 중심을 지킬 것인가.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담담히 지나가고, 누군가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오래 머문다. 그 차이는 재능이나 기질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의 유무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을 다스리는 힘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천천히 길러지는 능력일지 모른다.


서점의 한쪽을 가득 메운 마음수련과 자기 성찰의 책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리는 왜 이토록 마음을 붙들어 매려 애쓰는가. 아마도 삶이 그만큼 녹록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속이 좁아지고, 쓸데없는 자존심에 매달리고, 이미 지나간 일에 마음을 소모한다. 머리로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거창한 깨달음의 문제가 아니라,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작은 연습에 가깝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워간다.


그럴 때면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떠올리게 된다.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의 시간을 통과했을 고목. 거센 바람이 불면 가지를 꺾어 맞서기보다 바람의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고, 강한 햇볕이 내리쬐면 그 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도 끝내 뿌리를 놓지 않는다. 겉으로는 투박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숱한 계절을 견뎌낸 결이 켜켜이 새겨져 있다. 고목은 요란하지 않다. 다만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침묵이야말로 오랜 시간 스스로를 지켜온 힘의 증거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변화무쌍한 일상 속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이고 제자리를 지키는 일. 무던함과 유연함을 기르는 과정이 어쩌면 진짜 성숙에 가까운 길인지도 모른다. 초연함은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상태임을, 고목은 말없이 보여준다.


마음을 바로잡는 힘은 특별한 날에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한 하루의 반복 속에서 조금씩 다져진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며 맞는 공기, 하루를 정리하며 스스로에게 묻는 짧은 질문, 감정이 격해질 때 한 걸음 물러서는 연습. 이런 사소한 행위들이 모여 마음의 근육을 만든다. 우리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뿌리를 조금씩 깊게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완벽한 평온을 꿈꾸지 않는다. 대신 흔들릴 때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 하나를 마음속에 마련해 두고 싶다.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 그 질문이 방향을 잃은 마음을 조용히 제자리로 이끈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부러질 듯 흔들리더라도 뿌리를 놓지 않는 삶. 요란하게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깊이를 전하는 삶. 고목처럼 유연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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