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과 맞서기

내가 미움을 받을 때, 내게 일어나는 일들

by 나무나비

얼마 전 나는 남편과 크게 다투었다. 처음에는 그 일이 지구 멸망이라도 불러오는 것 같은 엄청난 일인 줄 알았다. 나는 실제로 내 삶을 끝내야 하나 고민까지 했다. 그러나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일은 그렇게 엄청난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크게 다투었지만 감정이 좀 잦아들고 난 후에 남편은 일부러 나를 찾아와 사과했다. 남편이 나에게 엄청난 욕을 한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 사건 자체가 아닌, 그 사건을 해석하는 내게 있었다. 남편의 의도를 오해하고, 혼자 깊이 상처 받고 몸부림을 쳤던 것이었다.


<분노 수치심 죄책감>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어릴 적에 어떤 잘못에 대해서 '남들과 비교'를 통한 훈계를 받는 경우에는 수치심을 느끼고, 이것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저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그건 잘못이다'하고 끝나면 될 일을 '그렇게 하면 남들이 다 너를 싫어한다.'거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면 아이는 남과의 비교를 통한 수치심을 느낀다. 돌아보니 내가 아이를 그렇게 가르치고 있었고 나 또한 그런 가르침을 받고 자라왔다.


나는 내가 미움을 받는 상황에 대한 감정이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내가 답답한 것 중 하나는, 이 사실을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밝힐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사태가 더 증폭되고 심각해질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는 나를 미워하는 제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고, 내가 공감을 할 생각도 없는데 이 소문이 퍼지게 되면 그는 더 교묘한 방식으로 나를 고립시킬 것 같기도 했다. 울거나 더 불쌍해 보이는 방법으로. 이런 경우 사람들은 더 불쌍한 사람의 편을 들게 마련이다.


오늘은 그를 만날 일도 없는 날이었지만, 나는 그의 생각을 또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사태를 알게 될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는 나를 미워하기 전 참으로 착하게 굴었던 사람이었다. 마치 '착한 사람의 표본'처럼, 사과하지 않을 일에도 사과를 하고 내가 아프거나 힘들 때는 따로 연락을 해서 챙겨 주었다. 그런 그가 진짜 사과를 하고 관계를 해결해야 할 일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그래서 처음에는 얼른 받아들여지지 않고 죄책감이 들기도 했었다. 그는 현재, 나를 제외한 이들에게 똑같이 '착하게' 구는 중이고 그래서 나를 제외한 이들은 그가 여전히 착한 줄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실은 나에게 이렇게 대했다는 것을 알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주 통쾌한 일이 일어날까. 어떻게 그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분개할까. 그런 상상을 할 때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어떤 소설에서의 '사이다' 부분을 보는 것처럼. 그가 나에게 했던 짓들이 드러나고 그것이 사람들 앞에 펼쳐질 때 사람들이 그를 제대로 보게 되는 일들이 있다면. 그런 상상을 통해서 나는 기분이 조금 나아질 수 있었다. 마치 내가 지금 혼자 마음 고생을 하는 것이 그런 상상을 통해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기 힘들다. 드라마에서처럼, 한 사람의 악행이 드러나고 그 사람의 행위가 모두에게 전시되면서 통쾌하게 마무리가 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나는 실제로 한 사람의 악행이 드러난 경우를 보았고, 그 사람이 모두에게서 외면을 받는 상황도 겪었는데 그럼에도 그것은 통쾌하게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그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끝까지 불쌍한 척을 했고, 그래서 스트레스는 여전히 피해자들이 받았다. 그리고 피해자들끼리 서로 다투는 일도 발생했다. 그 악인 때문에 발생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나를 미워하는 그를 내가 무어라 확실하게 진단 내리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확실한 것은 그는 나에게 아무런 공감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우리는 선물을 주고 받았고, 서로의 안부를 걱정했었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야 알았다. 그런 일들이, 그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나는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그렇게 크게 잘못한 것인가 싶은 일에도 먼저 숙이고 사과를 했음에도, 그는 결국 나를 외면했다. 내 감정과 내 존재가 그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미움을 받고 나서 내가 느낀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어릴 때, 엄마는 나의 잘못에 대해서 애정 어린 훈계를 하는 대신에 미움에 가득찬 폭력을 휘둘렀다. 빗자루 같은 것으로 몸 여기저기를 때리거나 내쫓겠다고 위협을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들을 던졌던 것 같다. 아무도 너처럼 하지 않아, 그렇게 하면 아무도 널 좋아하지 않아. 나는 미움을 받으면서 동시에 집단으로부터 거부되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 수치심은 마음 깊이 축적되어서 존재하고 있다가, 내가 미움을 받자 다시 튀어나왔다. '네가 거부되는 이유는 너 때문이야' '아무도 미움 받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아무도 너처럼 미움 받지 않아.'


나를 괴롭게 했던 것은, 내가 미움 받는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실이 불러온 내면의 '수치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수치심을 해결하고자 상상을 통해서, 그와 함께 있는 집단의 다른 사람들이 오히려 그에게 죄를 주고 그의 실체를 알면서 내게 머문 이 수치심을 그쪽으로 돌려주기를 바란 것이었다. 거부당하는 것은 내가 아닌 그가 되기를 바라고, 그러므로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도 내가 아닌 그이기를 바라면서. 나는 상상을 통해 내 감정을 해결하는 '복수'를 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와 내가 속한 집단이,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도 그렇게 해결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 집단은 누군가를 몰아내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내가 상상하는 복수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설사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짜 복수가 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문제의 해결은, 누군가에게 수치심을 주어서 집단에서 몰아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이든 그이든, 그저 내보내는 것으로 해결된다면 그것은 어릴 때의 잘못된 교육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릴 때의 그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남이 다 하는데 나는 안 하는 것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없다. 남과 나의 삶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들이 다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면, 그것에 대해 위축될 이유도 없다. 남들이 나에 대해 오해를 하거나 자신들이 잘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고 내가 모두의 배척을 받은 것처럼 수치심을 느낄 필요는 없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까닭은 내가 받았던 잘못된 교육 때문이고, 내가 겪는 문제는 실제보다도 훨씬 작은 문제일 수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크게 공감하지 않고 개입하지도 않는다. 한 사람의 말에 '오호'하고 반응했다고 그 사람의 모든 감정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저 겉으로 그렇게 해 주고 나서 대부분 잊고 산다. 나 역시 그렇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나 그 사람이나, 문제가 생겼다고 다른 사람들이 제 일처럼 책임져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그 사람을 집단에서 몰아내거나 하는 등의 '참교육'을 시킬 권리 또한 다른 이들에게 없다. 내 문제는 내가, 그의 문제는 그가 책임질 일이다. 나는 독립된 주체이며, 내가 판단하고 또 그 일에 책임을 진다. 미움을 받기도 하고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그 역시 내가 감당하고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교육은, 동시에 사람을 집단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만든다. 어떤 행동에 대해 '그렇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이 널 사랑하지 않아'라고 하는 것은, 사랑받지 못하면 가치가 없다는 말을 함축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처럼 너도 행동해야 한다는 말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에서는 개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기 보다 집단에 종속되어 그 집단에 책임을 전가하도록 한다. 개개인의 주체성과 판단력을 말살시킨다.


이러한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은, 미움 받는 것이 마치 존재가 말살되는 것마냥 큰 일인 줄 안다. 사실은 그저 사람은 사랑을 받을 수도 있고 미움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인데, 그것이 가슴을 후벼파는 것처럼 아프다. 그래서 이들은 그 사람들이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받은 것처럼, 다른 이들로부터 제대로 외면을 받고 수치심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그런 복수심을 길러가다 보면 그에게는 아무런 배움도 일어나지 않는다. 미움 받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며, 내가 이것을 엄청나게 크게 생각한 것은 내가 주변인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이고, 그렇게 된 까닭은 어릴 때부터 받은 잘못된 교육 때문인 줄 알게 되면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홀로 미움 받는 길을 걸어가 보는 것이다. 걸어가다 보면 가시밭길인 줄 알았던 길이 의외로 탄탄한 돌길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세상에는 자신을 미워하는 이들만 있지는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되며, 그 길을 만드는 것은 결국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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