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걸 써야 해!

달리기 하고 나서 쓰는 게 아니라

by 나무나비

최근에 론칭한 작품이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았다. 다른 잘 나가는 작품들을 보며, 나는 왜 이렇게 쓰지 못했을까,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가서 웹소설 관련 책을 읽어 보았으나 다 아는 내용이었다. 다른 작품을 많이 읽어서 트렌드를 알아야 했는데. 반성과 후회로 요즘 내내 우울했다. 웹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7-8년이 되어 가는데, 내 주변의 작가 중에서 비슷한 경력의 작가 중, 나와 비슷한 수의 작품을 낸 작가들은 대부분 대박 작가가 되었는데. 조바심이 파도처럼 내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대박작 분석부터 제대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대박작을 안 읽어본 것은 아니었다. 읽어 보았지만, 그대로 쓰면 표절이 되니 안 되고, 그것을 자기화해서 쓰자니 내가 쓰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특히 로맨스에서 남자가 여자 위에 군림하거나, 초반부터 남자가 여자에게 욕정을 품고 그저 몸에만 관심을 두는 내용은 독자들이 좋아하는 클리셰이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욕정이 아닌 내면의 사랑,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사랑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그리고 로맨스 웹소설 작가이지만, 로맨스 웹소설을 즐겨 보지는 않는다. 물론 예전에는 즐겨 보았었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대부분 읽다 보면 내용이 비슷해지고 예측이 가능해졌다. 내가 어느새 로맨스 소설 코드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런 코드에서 벗어난 작품을 선호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로맨스 웹소설 독자들은 클리셰대로 가는 것을 좋아하기에 인기작들도 대다수가 충실하게 정해진 코드를 따르고, 나는 인기작 분석을 한답시고 보다가 그만 포기하고 만다.


그러면 나는 대체 뭘 써야 하나. 로맨스 웹소설 작가이지만 로맨스 웹소설의 주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렇다고 로맨스 소설 자체를 싫어하지 않는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고민 중에, 내가 예전에 들었던 에세이 수업 선생님이자 작가님이 그동안 수업을 들은 이들을 모아서 온라인 모임을 열었다. 모임에 참여한 이들은 서른 명 정도였다. 작가님은 서로 근황이나 고민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는 그저 들을 생각이었지만 말하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요즘 머리 아프게 하는 고민이 있기도 해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웹소설을 쓴 지 꽤 되는데 대박을 내본 적이 없다. 물론 소소하게 잘된 작품들이 있기는 하지만. 내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싶다. 다른 작품들을 많이 읽고 독자들이 뭘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걸 잘 못 하는 것 같다. 에세이는 쓴 지 얼마 되지 않지만 에세이 역시 한계에 부딪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질문인지 주절거림인지 모를 말을 하고 나서 나는 조금은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은 작가님이 이렇게 말했다. “저도 대박작 없는데요.” 나는 얼마 전에 출간한 책이 대박작이 아니냐며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 사람마다 기준은 다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의 책은 매우 좋고 나는 그가 페이스북에 쓰는 글들을 종종 재미있게 읽지만, 내 남편은 그를 모른다. 그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물론 글이 좋아서 끊임없는 청탁이 있고 북토크며 강연이며 등등의 스케쥴도 매우 많지만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처럼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아는 그런 작가는 아니다.


작가는 이어서 이야기했다. 대박작은 없지만, 남들이 대박작 한 권 낼 때 열 권 낸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고 있다고. 트렌드를 읽고 잘 팔리는 글을 분석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아서 그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있다고. 웹소설은 그렇지 않다, 상업적인 글은 다른 작품을 읽고 트렌드 분석을 하는 게 필수적이다, 라는 말을 하려던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웹소설이든 에세이든 결국은 작가 마음대로 쓰면 되는 것이다. 그 분야가 상업적이라고 해서 내가 꼭 상업적인 목적으로 글을 쓸 필요는 없다. 그리고 애초에, 나는 돈을 벌려고 웹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하필 내 주변에 기라성 같은 작가가 있어서 비교가 많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출판사와 계약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 글을 출간하려면 플랫폼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것도 비교적 잘 되는 편이다. 문제는 그 후에 결과가 안 좋았다는 것이지만 또 나름 괜찮았던 적도 있다. 나를 배우에 비유하면 아무도 모르는데 끊임없이 작품에 나오는 무명 배우쯤 되지 않을까. 무명 배우라고 배우가 아닌 것은 아니듯이, 이름 없는 작가라도 작가인 것은 맞다. 나는 내 글을 마음대로 쓸 자유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최근에 쓴 글들은 대부분 트렌드에 발맞추려고 발버둥을 친 글들이다. 우스운 게, 분명 돈을 바라고 쓴 글이 아닌데 쓰다 보니 돈을 바라게 되어 버렸다. 남들이 작품을 써서 얼마나 벌었는지, 플랫폼에서 순위가 어떤지 등등을 신경쓰다 보니 내 글도 거기에 발맞춰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가 처음 글을 쓰고 싶었던 목적과 방향을 상실해 버렸다. 그래서 결과는 어떠했는가. 돈도 잘 못 벌었을 뿐만 아니라 내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도 없었다. 이도저도 아니게 된 것이다.


어차피 해도 안 되는 거, 깔끔하게 대박 작가가 되는 건 포기하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볼까. 고맙게도 플랫폼에 글이 올라가면 한 명 이상은 보니까, 그 한 명에게는 나는 영향을 주는 셈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서 한 명의 독자를 얻는 것이 얼마나 뿌듯하고 보람된 일인가. 생각해 보니 작가라는 직업은 참으로 매력이 있다. 자기 가족과도 생각을 맞추기가 힘든데,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독자들과 생각이 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인가.


얼마 전에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웹소설 작가 모임에 갔었다. 그곳에서 다른 웹소설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합의한 결론은 하나였다. “자기가 가슴 뛰는 작품을 써야 해!” 누가 이 이야기를 했는지 얼른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말을 듣는데 진짜 거짓말처럼 가슴이 뛰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 내가 가슴이 뛰는 작품이 아닌데 독자들의 가슴이 뛸 리가 있는가. 그러므로 나는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쓰지 않고는 미치는 것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남들이 다 쓴다고 쓰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찾아 그것을 전달하는 것, 그것이 작가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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