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미움, 어떤 아픔에 대한 이야기

by 나무나비

십 년이 훌쩍 넘은 일이던가.

직장을 그만 두고 나는 에세이 쓰기 모임에 들어갔다. 요즘에야 그런 모임이 많지만 그때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을 한 권씩 읽고 그것에 따른 글을 주마다 써서 발표를 하는 모임이었다. 지금도 나는 여러 에세이 모임, 혹은 책을 읽는 모임을 하지만 그 모임만큼 치열했던 모임은 이후에도 없었다. 작가나 모임의 색깔이 분명해서일까. 그 모임은 다툼도 많았고 또 끈끈함도 있었다. 그것은 모임이 끝나면 필수적으로 이어졌던 뒤풀이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의 나는 직장도 아이도 없는 백수 아내였기에 자유롭게 뒤풀이에 참석해서 때로 버스가 끊길 때까지 있기도 했었다.(그날은 새벽 차를 타고 집에 들어갔다.)


나는 그 모임이 참 좋았고, 무엇보다 그 모임의 리더인 작가를 좋아했다. 지금에 와서는 내가 좋아했던 것이 과연 그 작가가 맞나 싶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저 젊고 순수했고 열망이 컸고 어리석었다. 어느 순간, 나는 내가 그 모임원인지 그 모임원이 나인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그 모임에는 단체로 쓰는 게시판이 있었는데 나는 내 신변잡기적인 모든 이야기를 그 게시판에 올렸고,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과 수다를 떨었다. 고민이 있어도, 남편과 다투어도, 또 어떤 문제가 있어도 나는 그 게시판에 의존했다. 교회도 가족도 그 동안 나를 지탱했던 어떤 관계도 후순위로 밀려났다. 그게 어쩌면 문제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모임에 의존도가 높아서였을까, 나는 서서히 작가에게 실망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때로 합평에서 나를 나무라는 듯이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밤새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서운하다 힘들다 하지만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어쩌면 나는 다시 어린 아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가 나를 봐주기를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남편도 그 무엇도 나를 온전히 받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던, 외로움을 학습하고 있던 그때쯤 나는 그 외로움을 어떻게든 떨쳐내고자 게시판에 내 삶을 실어댔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그 작가에게는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점차 우리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침묵했다. 그는 여전히 뒤풀이 때에 내게 살갑게 굴었다. 나 역시 그가 말하면 웃어주었다. 우리 내면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그렇게 가면을 벗기를 두려워했다. 결국 균열은 일어났다. 어느 날 작가가 나에 대한 꽤나 공격적인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 내가 여러 번이나 반복했던 글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요지는 예의를 지키자는 것이었다. 전체를 대상으로 쓴 것처럼 보이지만 누가봐도 그것은 나를 대상으로 쓴 글이었다. 나는 깊이 상처 받았고, 당장 게시판에 모임을 나가겠다고 글을 올리고 탈퇴를 했다. 의지할 곳이 없어서 울었고 남편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서 이야기를 했다.


하필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남편이었다. 남편은 나보다도 관계에 미숙한 사람이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게 포장하지만 내면을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것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런 남편은 내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을 안 볼 것이 아니라면 사과를 하라고 했다. 나는 붙들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리고 여전히 그들을 향해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다시 모임에 들어오게 해 달라고 사정하고 사과글도 올렸다. 한 마디로 참 멍청한 짓을 한 것이었다. 작가는 내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내가 사과를 한 이상, 그 작가가 내게 상처를 주었던 일은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나는 내심 그런 마음이 있기도 했다. 사람이라면, 자기가 공개적으로 그런 글을 올린 것에 대해서 나에게 사과해 주지 않을까. 내가 그래도 사과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공개적으로 글을 올려서,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나의 잘못을 나열했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나는 절망했고, 더는 이 모임은 내가 좋아하던 그 모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다음 주에 작가가 커피 쿠폰을 보냈다. 말도 없이 보내서 뭔가 싶었더니, '마음을 전해요'라는 문구가 달랑 하나 있었다. 어떤 마음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참 글 잘 쓰는 작가인데, 왜 그런 모호한 단어를 썼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모호하게 쓰지 말라고 우리한테 가르쳤으면서 말이다. 어쩌면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소통하는 것을. 내가 그에게 준 것이 상처가 된 그 원인에 대해 파고들기를. 나는 실상 그에게 상처를 주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으므로 억울했으나, 그렇다고 커피 쿠폰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낯모르는 사람에게 주어 버리고, 쿠폰에 대해서는 과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어차피, 그가 게시판에 내 잘못을 재차 나열했던 순간부터 나는 나로서 그를 대할 수가 없었다. 나는 철저하게 가면을 뒤집어써야 했다.


나는 사과의 책임을 다하고자 그 모임의 마지막까지 참석했다. 그는 나에게 과하게 친절하게 굴었다. 나는 마주 웃으며 적당히 거리를 유지했다. 그 모임의 마지막에는 1박 2일로 엠티를 가는데,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적당히 시댁 핑계를 댔다. 남편은 가라고 했지만 나는 더는 가면을 쓰고 싶지 않았고, 그의 곁에만 가도 벌벌 떨려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모임의 뒤풀이에서인가, 그가 내 목 언저리의 옷을 바로 해준다고 손을 뻗었고 나는 몸을 움츠렸다. 그것은 다소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는 조금 떨떠름해하더니 손을 거두었다. 그와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는 그 모임에서 운영하는 게시판에서도 나왔다. 물론 내 글은 모두 지우고 나서였다.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뭐가 문제였을까. 그와는 개인적으로도 메일이나 문자 메시지 등으로 소통을 하던 사이였다. 지나치게 가까웠던 것이 문제였을까. 서로가 서로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었을까. 어차피 우리는 각자의 모습으로 있는 것이고, 그래서 오해가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걸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을까. 어느 순간 나는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차피 그와는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굳이 용서까지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책을 냈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또 가슴이 벌벌 떨린다.


생각해 보면, 내가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를 대했던 나를 용서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당당하게, 나 상처받았다 말하지 못했던 것을. 끝까지 그저 사과하고 굽혀서 그의 마음에 들고자 노력했던 것을. 내 자신에게 그것이 너무 미안해서 나는 아직 그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 그래서 이제는 나를 좀 용서해보려고 한다. 그렇게라도 사랑 받고 싶었고, 그렇게라도 살고 싶었다고. 그래서 나를 죽이고, 말하지 못하고, 바보 같이 사과를 했던 것이라고. 오히려 사과를 한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그건 어쩌면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더 당당히 세워가기 위해서, 내 안의 죄를 씻기 위해서 나는 사과를 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나는 그의 책을 볼 수 있을까. 지금은 그의 책은 커녕 그가 추천한 책조차 보지 못한다. 어느 날은 엄청나게 끌리는 제목이 있어서 살까 했다가 저자를 확인하고 바로 포기해야 했었다. 아직은 내 안의 나를, 상처 받은 나를 달래주어야 하겠다. 세상에 책은 많고 좋은 책도 많으니 그런 책을 읽으면 되지 굳이 상처 받아가면서 책을 읽을 필요야 있나. 용서는, 내가 나를 받아들이고 나서 서서히 해도 되겠지. 우선은 이렇게 그의 이름만 봐도 떨리는 내 마음부터 달래고 싶다. 많이 힘들었고, 때로는 울었고, 많이 미웠던 나를, 이제는 그만 용서하고 놓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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