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징악의 신화에서 벗어나기
한주간 마음이 복잡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생겼다. 나의 사과에도 그의 마음은 풀어지지 않았고,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채 몇 달이 흐르고 있다. 다른 이들에게는 생글생글 잘도 웃어주면서 교류를 하지만 내가 인사를 하면 갑자기 똥씹은 표정이 되어 버리는 그를 견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를 아는 다른 이들에게 사건을 이야기하자니 사건이 해결되기는 커녕 더 꼬여버릴 것만 같다. 어떻게 해도 그가 마음을 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저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을, 오래 마음에 담아두는 것은 내가 이런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도 '내가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나르시시즘적인 사고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저 자신이 싫어 나를 거부할 뿐인데 나는 그가 마치 나의 무용함을 증명하는 것처럼 느낀다. 그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며, 그가 설사 대통령이라도 나를 무가치하다 여길 자격은 없는데도 그의 태도에서 나는 절대성을 느끼며 한없이 위축이 되어 버린다.
그런 나를 일으킨 것은 신앙이었다. 이 일의 전후로 나는 열심히 기도를 했고, 그 속에서 '응답'이라는 것도 나름 여러 번 경험했다. 그 '응답'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천사가 날아오고 온몸이 빛으로 덮이는 등등의 신비로운 체험은 아니었지만, 어떤 특정한 성경 구절이 특별히 마음에 와 닿는다거나 남을 미워했던 마음이 스스로를 향한 죄책감으로 바뀌어 회개를 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더 깊은 이해와 사랑의 단계로 나아간다거나 하는 등등의 체험이었다. 이 체험은 특히 내 가족들을 더 사랑하게 만들어서, 나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했다.
과정은 힘들었으나 그속에서 맺어진 열매들로, 나는 다져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성장시키는 데에는 교회가 큰 역할을 했다. 매주 대예배로, 또 모여서 함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셀예배로 나는 튼튼하게 자라갔다. 교회학교 봉사를 더 늘린 것도 그런 이유였다. 내가 받은 것을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누고 내 시간을 써서 많은 이들이 나처럼 내면적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예배를 통한 성장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나는 개인적인 경건 시간도 웬만하면 꼭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교회 주보에 광화문 예배 광고가 실렸다. 광화문에서 예배라니. 연합예배라는 형식으로 부활절 예배를 드린 적은 있었지만 광화문으로 나가서 예배를 드린 적은 없었다. 나는 그것이 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한 집회의 성격을 띤 예배라는 것을 알았다. 담임 목사님은 예배 설교 중에 동성애 인정과 차별금지법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광화문 예배를 독려하셨고, 각 셀리더들에게도 그 말씀이 전해졌는지 셀리더가 연일 단톡방에 관련 동영상과 글을 남겼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은 내 마음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교회가 정치세력화되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고, 개개인의 판단과 선택이 필요한 일을 교회의 리더라는 이들이 '강요'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고 의지했던 교회에서의 일련의 일로 나는 복잡해졌고, 대학 선교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차마 교회 같은 셀 사람들에게는 내 마음을 솔직히 말하기 어려웠다. 담임 목사님을 좋아하고 그분의 말씀을 생명처럼 따르는 이들이 내 말을 어떻게 여길 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한 사람의 미움도 견디기 어려운 내가 다수의 미움을 견딜 수가 있을까. 나는 그 말을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셀 단톡방에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같은 교회를 다니는 남편은 아무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나를 설득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렇게 날과 날이 지나고,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읽기 모임 광고를 보았다. 이 시점에 도스토예프스키라. 이름을 말하기도 어려운, 유명하지만 책이 두꺼워서 읽은 이들은 많이 없는 러시아 작가를 나는 한때 좋아했었다. 좋아해서 전집을 샀지만 이상하게 산 책은 한 번도 읽지 않고 세월의 먼지가 쌓였다.
충동적으로 모임에 가겠다 신청하고 돈까지 낸 후에, <악령>을 읽기 시작한 나는 그야말로 <악령>이라도 든 듯이 괴로워졌다. 러시아 이름들은 길었고 발음하기도 힘든 데다가 외우기는 더 힘들어서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도 어려운데 1부는 내용도 복잡해서 두 번을 읽어도 이해가 안 갔다. 괜히 신청했나, 그냥 지금이라도 가지 말까, 두꺼운 책을 보며 나는 절망을 삼켰다. 이해 되지 않는 책을 꾸역꾸역 읽고 모임 장소로 갔다. 강사는 나의 친구의 언니였는데,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했지만 또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다. 나는 그에 대한 좋은 말과 좋지 않은 말을 들었고 친구의 언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친구와 닮은 그 친근한 미소에 낯설지 않음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책은 어려웠으나 강의는 재미있었다. 강사는 러시아 문학 박사이면서 지금 여러 대학에서 출강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당시 러시아와 작가에 대해서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풀어주었다. 어릴 때에 데뷔작으로 '자다가 스타가 된 작가'이지만 러시아 정부에 의해 죽을 뻔하고 8년이란 시간 동안 수형 생활과 군대 생활을 해야 했으며 이후로도 출판사와 불공정 계약을 체결하고 히스테릭한 부인과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했던 천재 작가. 현재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인 그는, 단지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이유만으로 질투심과 자격지심에 당시에도 유명했던 작가 투르게네프를 모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가 찌질하게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첫번째 부인의 전남편의 아들, 그러니 자신과는 피 한방울 안 섞인 아들을 평생 건사했으며 자신의 형의 부인과 자식들도 책임졌다. 첫작품을 포함하여 그의 작품은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았고 마지막으로 쓴 작품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단행본이 나오자마자 품절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그는 병약하고 위선적이며 히스테릭한, 어느 한 군데씩 모가 난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그것은 작가 자신에 대한 진지한 탐구이기도 했다. 그의 세계는 불편하고 악의와 교만과 위선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 사람들에게 읽히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세계를 배우면서, 문득 나는 어린이들이 경험하는 환상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도 나를 미워하지 않는 세계,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이들만 있는 세계, 누가 어렵다고 하면 손발 걷어붙이고 도와주는 그런 세계 말이다. 미움을 받기 시작하니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또다시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를 찾아 교회로 숨어들었지만, 교회 역시 내가 원하는 세계는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내가 속한 모든 세계가 그러할 것이다. 나부터가 완벽하지 않고, 위선과 오만과 자격지심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그런 세계를 찾는다고 한들 내가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
도스토예프스키는 투르게네프에게서 돈을 빌렸고, 투르게네프는 부자이자 또 평판도 좋고 매너 있는 사람으로 그에게 특별히 갚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도스토예프스키는 투르게네프가 자신에게 계속 빚독촉을 한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게다가 <악령>에서는 누가 봐도 투르게네프라고 짐작될 수밖에 없는 작가 등장인물을 등장시켜서 그를 매우 조롱한다. 자신보다 우월한 투르게네프를 향한 질투와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투르게네프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천하의 원수이자 망할 자식일 것이다. 명예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러시아 사회에서, 그것도 투르게네프처럼 작가로서 확고한 지위와 명성이 있는 사람으로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예 훼손은 매우 치명적인 것일 수 있다. 만약 이 세상이 투르게네프가 주인공인 소설이라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지 않을 만큼 얻어맞고 부랑자가 되어 근근이 살아가는 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런 소설이 아니며, 투르게네프가 명성을 얻었듯이 도스토예프스키도 그런 짓을 벌이고도 제 작품을 잘 써서 인정을 받고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권선징악을 꿈꾸고 있었다. 나를 미워했던 이의 죄악이 모든 이들에게 까발려져서, 그가 고개를 숙이며 다급히 사람들을 떠나는 모양을 상상했었다. 교회가 정치 집회에 사람을 독려하고 동원하는 것이 과해서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서 담임 목사님이 모두의 앞에서 '내가 이렇게 말을 한 것은 잘못이었다' 고백하는 모습 역시 상상했었다.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권선징악도 아닐 뿐더러 그렇게 될 수도 없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선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내 것이 아니다.
세상에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며, 이 세상은 완벽하게 굴러가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고도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하고, 최선을 다하고 정직하게 산 이에게도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며, 그 생각 중에 대부분은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기 보다 그저 다르기만 할뿐이다. 개개인은 나름 균형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늘 반듯하게 살았던 사람이 어느 날은 매우 비뚤어진 행동을 하기도 하며, 그 반대의 일도 물론 일어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고 살아가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매일 겪는 일이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 화자는 그저 사건을 전달해줄 뿐 전지전능하지 않다. 작가 역시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는다. 주인공으로 삼았던 이가 매력이 떨어져서, 보조 인물이 갑자기 주인공으로 급부상하기도 한다. (<악령>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불완전성, 세상의 불완전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것도 알고, 또 다른 인간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의 매력이 되었다. 나는 오늘의 괴로움의 해답을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타국의 작가를 통해 조금 얻은 듯했다. 너무 완벽한 것을 바라지 않을 것, 나에게나 타인에게나 조금 관대해질 것. 그럴 때 나는 '진짜' 세상의 모습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