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 자존감의 극명한 대조 - 1,2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15화나 되는 그 드라마는 한 번 빠지고 나니 정신 없이 보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 은중과 상연이라는 두 사람의 심리를 마치 곁에 있는 사람인 듯이 생생하게 그려내어서일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은 ‘자존감’이라는 키워드였다. 은중과 상연은 친구 사이인데, 나이도 같고 성별도 같은 두 사람은 비슷한 또래임에도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은중은 가난하지만 자존감이 높은 캐릭터이다. 은중은 엄마에게 건강한 사랑을 받으며 자기 자신도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아는 인물이다. 그러나 상연은 그렇지 않다. 그녀는 부자로,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자라지만 끊임없이 은중을 질투하고 그것을 겉으로 드러낸다. 그녀는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오빠만 사랑한다고 믿었고, 그 어머니가 은중을 사랑해주자 견딜 수 없게 된다. 자신 역시 은중을 사랑하면서도 그녀에게 못되게 굴고 멀리하기도 한다.
자존감이 높은 은중에게 친구라는 존재는 또 하나의 자신이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타인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녀는 상연 역시 사랑해준다. 그녀가 자신에게 못되게 굴어도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으며,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했다고 믿는 상연은 그런 은중을 스스럼없이 사랑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과는 다르게 건강하게 사랑을 주고받을 줄 아는 은중을 질투한다.
드라마는 자존감이 다른 두 인물이 어떤 행보를 걷는지를 보여준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자존감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요즘 사이버 대학을 다니며 듣는 심리학 수업에서 한 교수는 자존감이라는 키워드가 한 번 붐이 일었을 때가 있었는데, 그 주제는 여전히 뜨거우며 향후 몇십 년간은 그럴 것이라 예측했다.
자존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자존감이란, 스스로에게 느끼는 가치를 의미한다. 자존감이 높은 인물은 타인이 하는 자신에 대한 평가에 의존하지 않는다. 또한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에도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의 존엄성은 자신이 지킨다고 믿으며 타인의 존엄성 역시 같은 연장선상에서 지켜준다. 자존감이 높은 인물은 자신이 그렇게 원하는 것처럼 타인이 원하는 선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이상으로 다가가지 않으며, 그의 의견을 존중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그와 다르다. 자존감이 낮은 이들은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흔들린다. 자신이 스스로를 가치있게 여기지 못하니,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민감하게 굴 수밖에 없다. 타인을 대할 때에도, 타인이 스스로 해야 하는 것도 자신이 해 주어야 한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녀들에게 그렇게 대할 때가 많은데 자녀에게 지나치게 참견하면서 자녀가 그것을 거부할 때 그것을 건강한 자기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감히 부모인 자신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여겨 분노한다.
자존감은 전반적인 삶의 질을 결정한다. 이미 많은 심리학자들이, 자존감이 우울증이나 기타 다른 정신병적인 증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인지치료 이론으로 유명한 아론 벡은 우울증의 원인으로 인지 삼제를 들었는데, 인지 삼제란 자기 자신, 그리고 세상과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은 쓸모 없는 존재이며, 세상은 자신에게 적대적이고 미래는 암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인간은 우울해질 수밖에 없으며 살아갈 의욕도 잃어버리게 된다. 여기서 자신이 쓸모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이것이 바로 낮은 자존감을 의미한다.
웹소설 작가에게 낮은 자존감이라는 것은
자존감이라는 것이 늘 높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낮은 자존감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삶의 과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 웹소설 작가에게도 마찬가지다. 웹소설 작가는 대부분 회사에 소속이 되어있지 않은 채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작품 별로 계약을 맺기에 스스로에 대한 건강한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인식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작품이 인기가 없어도 내가 그런 것은 아니다’ ‘댓글로 작품 욕을 먹어도 내가 욕을 먹은 것은 아니다’ ‘악플은 내가 아닌 그 악플을 단 사람의 문제다’ ‘나는 어떤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가치있는 인간이요, 존중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식을 지닌 사람은 작품이 잘 안 된다고 해도 쉽게 절망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새로운 작품 집필에 집중한다. 또한 댓글을 비롯한 타인의 의견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쓴다. 그렇다고 자신이 쓰고 싶은 작품에만 매몰되어 남의 의견은 전혀 듣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이들은 마음도 열려 있어서, 작품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되면 얼마든지 받아들인다. 다른 작품과 자신의 것을 비교 하면서 부족한 점을 점검하고 새로 집필할 때는 그러한 것들을 참고하여 더 나은 작품을 쓰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이들은 언젠가는 좋은 작품을 써낼 수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웹소설 작가로서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작품 성적은 좋지 않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짐에 감사할 줄 안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작가들도 많이 있으며 나 역시 그러하다. 열 개의 좋은 댓글과 한 개의 악플이 달렸을 뿐이지만 내 눈에는 열 개의 좋은 댓글은 보이지도 않는다. 누군가 자료 조사를 똑바로 하라는 말에, 차기작은 자료조사만 하다가 정작 재미를 놓쳐서 또다시 작품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작품이 잘 안 되면 나 역시 인생이 실패하는 것 같아서 그것을 피해 보려고 끊임없이 작품을 써대지만 건강한 반성과 숙고가 없는 글은 또다시 실패를 낳을 뿐이다. 반성하지 못하는 것은, 작품이 곧 나라고 인식하여서 그것을 되돌아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못된 버릇은 나아지지 않는다. 잘한 것조차 내가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니 그 장점마저 글에 보이지 않게 된다. 작품을 쓰면 쓸수록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 마음의 구렁텅이에 쳐박히게 되니 작가로서의 삶 이전에 삶 자체가 크게 흔들려 살아갈 이유조차도 잃어버린다.
웹소설 작가가 무엇보다도 먼저 갖추어야 할 것
작가로 살면서 심리 치료나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웹소설 작가로서 끊임없이 성과를 내야 하는 삶에 낮은 자존감이 결합되어 최악의 결과를 내고 있기 때문일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쓰면 쓸수록 작품의 성적이 올라가기는커녕 떨어지고 나 역시 작품을 쓰면서 충분히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자존감에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니,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못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는 그것을 고쳐서 잘 해 봐야겠다는 생각 대신에 ‘이렇게 잘하지도 못하니 나는 망했다’라는 파괴적인 생각만 들었다. 그러한 생각이 나를 좀먹고 있음을 알게 되니, 내가 지금 고쳐야 할 것은 웹소설을 더 잘 쓰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태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타인에게서 종종 듣는 말이기도 한데, 소설을 창작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웹소설 작가 주위에는 웹소설 작가밖에 없으니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세상에는 작가보다도 작가가 아닌 이들이 훨씬 많다. 그것은 작가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선택된’ 존재들이라는 뜻이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부터가 조금 별종이기도 하다. 그러니 자신이 글을 쓸 수 있다는 능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그런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도 하면서 자신이 이룬 작은 성과라도 칭찬하고 격려할 필요가 있다. 남에게서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면 내가 스스로 그런 대접을 해 주면 된다. 이건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