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다른 직업을 가졌었다
나는 한때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그곳은 사립 학교였고, 나는 이십대 후반의 나이에 그곳에 정교사로 합격을 했다. 사립학교에 이십대 후반의 여자가 정교사로 합격하기는 참 어렵다. 까닭은 경쟁자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여교사보다 남교사의 비율이 낮기에 여교사가 조금 더 경쟁률이 세다. (학교 입장에서는 남교사도 여교사도 필요한데 남자 지원자에 비해 여자 지원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 학교에 합격하기 전, 나는 기간제 교사로 이 학교 저 학교를 전전했다. 기간제 교사는 정교사와 하는 일은 같았으나 다만 내년이 없었다. 정교사로 합격하고 나서 가장 좋았던 것이 내년이 있다는 것이었다. 정교사끼리는 이런 대화가 가능했다.
"내년에 몇 학년 지원할 거예요?"
"저는 2학년이요."
내가 근무했던 학교는 담임할 학년을 지원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지원한 대로 다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원을 하고 내년을 꿈꿀 수 있다는 것에서 정교사는 일단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다.
나는 교사를 내 적성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남과 접촉하고, 남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인도해 내는 것은 늘 버거웠다. 그런 내가 왜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을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남의 생각에 나를 끼워넣은 결과인 듯했다. 여자로서 교사라는 직업이 매우 좋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고. 까닭은 임신과 출산 때문이었는데, 다른 직업 중에 교사만큼 임신과 출산에 대해 호의적(?)인 직업이 드물기 때문이었다.
한 예로 대기업 사원이었던 친구는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을 1년밖에 내지 못했다. 겨우 3개월 쉬고 복직한 예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교사는? 내리 3년을 쉴 수 있다.(육아 휴직이 그렇고 출산 휴가까지 더 하면 조금 더 쉴 수 있다. 물론 쉬는 것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출산하고 육아를 하는 것이지만.) 보통은 사립 학교는 그만큼의 휴직을 주지는 않지만 내가 근무했던 학교도 2년 정도는 다들 쉬는 분위기였다.
정년 보장에 임신과 출산, 육아까지 휴직이 자유롭고 또 퇴근도 빠른 직업. 그래서 여자들에게 교사는 꿈의 직업이고 선호될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고 한다.
그런데 생각하면 웃기지 않은가. 단지 여자라서, 적성이나 흥미, 특기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그저 임신과 출산과 육아에 맞춰진 직업을 권하다니. 여자가 마치 그것을 위해 태어난 동물처럼 말이다. 만약 그런 이유로 여자들이 교사라는 직업을 택한다면, 학생들은? 그저임신과 출산, 육아를 위해 학생들은 제 적성도 아닌 여자들이 되는 교사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인가?
물론 내가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은 대부분 교사다운 사람들이었다. 학생들을 늘 먼저 생각했고, 사람들에게 관대했으며, 명철했고 온유했다. 어떤 선생님은 내게 무상으로 카풀을 해 주시면서 내가 주유소에서 기름값이라도 계산하려고 하면 화를 내셨고, 어떤 선생님은 내가 외로워 보인다고 독서 모임을 만들어 그곳에 끼어서라도 다른 교사와 어울리도록 배려하셨다. 어떤 선생님은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 몰래 달달한 초코맛 음료수를 내 자리에 두고 가시기도 하셨고, 어떤 선생님은 내가 큰 실수를 저질러서 피해를 입었음에도 너그럽게 웃으시며 용서를 해 주셨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좋은' 선생님이 압도적인 비율로 많았다. 아마 어느 학교에 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거쳐간 학교들은 대부분 그랬었다.
그것은 교사라는 직업 자체가 아무리 여자들에게 좋은 직업이라고 해도, 직업적 사명감이 없이는 될 수가 없는 직업이라서 그런 것 같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는, 그리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교사 생활이었지만 잃은 것보다 배운 것이 많고, 비록 지금은 접었지만 교사만큼 보람 있는 직업은 없다고 생각한다(물론 다른 직업을 가져보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곳을 나왔다. 여러가지 생각이 있었다. 내가 그곳에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었고, 아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면 어떻게든 버텨냈을 수도 있다. 안 그래도 고민이 많은 나를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바로 어제처럼 기억나는 그 사건은 매우 단순했다.
당시 우리반에는 습관적으로 지각을 하거나 학교를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 있었다. 한 4-5명 정도의 아이들이 매일 그랬었는데, 나는 그 아이들의 부모에게 매일 전화하고 그 아이들을 찾으러 근처 분식집을 돌아다녔다. 초짜인 나는 대체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고민이었다. 만나서 대화를 해 보면, 아이들은 그냥 순수하고 맑았다. 어떤 악의 같은 것도 없었다. 반에서도 종례 전이나 점심 전에 튀는 것 외에는 딱히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나는 아이들을 휴게실로 불러 모았다. 그냥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했다. 마치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나오는 '좋은 선생님'처럼. 드라마에서는 대개 그런 '좋은 선생님'에게 감화된 아이들이 나중에 학교를 잘 나오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훈훈한 마무리는 없었다. 학생들은 유하기만 한 나를 만만히 보았다. 이야기 들어주고 잘해주니까 더 심하게 엇나갔다. 나는 결국 학생부 교사와 상담을 하고, 그 학생들을 학생부로 보냈다. 체벌이 없어졌고, 벌점은 있으나마나한 상태였으므로 학생부 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데리고 청소를 시켰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화장실을 호텔 화장실처럼 반짝거리게 만들었다. 어쩐지 교실에 있을 때보다 더 생기가 있어진 것도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학생들과 진로 활동을 떠났다. 학생들에게는 짧은 과제들이 주어졌다. 마네킹을 주고 디자이너가 되어서 꾸미기, 벽을 그래피티로 칠하기, 등등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세상 어떤 것에도 의욕이 없던, 그리고 지각과 무단 조퇴, 그리고 무단 결석을 밥먹듯하던 그들이 완전히 집중해서 작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는 나에게 자신들의 작품을 보여주며 자랑까지 해댔다. 도망가지 않으면 다행이라 여겼던 그들의 행동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학생부 징계가 끝나고 교실로 복귀를 했다. 그러나 교실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수업 시간에는 어차피 일어나면 떠드는 그들이 자도 아무도 깨우지 않았다. 그들은 청소도, 그리고 디자이너가 되어서 마네킹을 꾸미기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교실에서 무력하게 있거나 잤다. 그 모습을 복도를 지나며 먼 눈으로 보던 나는, 그대로 멈추어 섰다.
십대, 한창 창창할 나이의 그들은 그렇게 시들어 가고 있었다. 그들이 무단 결석을 하고 지각과 조퇴를 하는 이유가 그제야 납득이 갔다. 학교에서는 그들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계속 학교로 부르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학교에 닿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학교에 없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들의 성적은 지지부진했다. 열심히 공부했던 아이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얼마 후, 그 중 한 아이가 나와 함께 교실로 가고 있었다.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진심이 흘러나왔다.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러자 그 아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학교는 당연히 다녀야죠, 선생님."
그것은 아이가 계속 들었던 진실이었다. 학교는 다녀야 한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다니고 싶지 않다. 그래도 다녀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된다, 그래야 인간 취급이라도 받고 산다.
학교는 다니고 싶지 않다. 학교에서는 내가 존재할 곳이 없다. 그 외침과 학교를 다녀야 하는 당위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마음은 아이와의 대화 후에 증폭되었다. 아이와 나는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반을 마지막으로 학교를 떠났다. 아이는 그 당시에는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무슨 대단한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냥 버티기가 힘들었다. 포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약해서 실패한 것일 수도 있겠지. 중요한 것은 그 이후에도 나는 버젓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잘 못 살 줄 알았는데, 좋아하는 거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물론 학교에 남았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지금의 삶이 좋다.
가끔 종종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 중에서 그런 글을 본다. 자녀가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 혹은 내가 어떤 진로를 원하는데 꼭 대학을 가야 하나. 댓글은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한다는 말로 도배가 된다. 나는 생각한다. 물론 대학을 가는 것이 도움은 될 수 있지만, 대학을 가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어떻게든 사람은 살게 마련이고, 제도권 밖에서도 쉽진 않겠지만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러니 정 힘들면 멈추어 서서 다른 선택을 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그 제도라는 것이 자신을 갉아먹고 자신의 존재마저 무력하게 만들 때에는, 자신을 지키는 법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