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아찔했던 기억
남궁인 의사의 <만약은 없다>를 읽고 있다.
저자는 페이스북 글로 주로 만나오다가 <우리 사이에는 오해가 있다>라는 책으로 좀 더 길게 만났는데, 그 책을 읽자 저자의 다른 책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닌, <우리 사이에는 오해가 있다>라는 책에서 저자가 명품 하나 산 적이 없다고 밝혔던 데에 있었다.
아니, 의사가 되려는 이유의 98퍼센트 정도는 센 봉급 때문일 텐데 무슨 까닭에 명품 하나 살 수가 없나. 내가 책을 사 줘야 겠다. 꼭 그래서라기 보다는 글이 재미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아무튼 나는 책을 샀다. 그것도 3권이나. 그런데 책을 사고 나서 <우리 사이에는 오해가 있다> 뒷부분을 읽다 보니 그런 말이 나왔다. 저자의 의사 봉급은 고스란히 저축을 하고 있다고. 이 양반 돈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 빚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미래를 위해서 돈을 쓰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책은 끝까지 봐야 한다...)
아무튼 산 책은 읽어야 겠기에 그 중 한 책을 읽었다.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생과 사의 이야기였다. 몇몇 소재는 드라마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긴박감이 넘치고 반전이 있었다. 하지만 그속에서 생과 사의 열쇠를 쥐고 순간을 다투는 의사들의 삶은 그만큼 고되겠지.
책을 읽다 보니 문득 출산을 제외하고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닷새 정도 입원을 했던 날이 떠오른다. 조금 특별했던 입원기였으므로 적어서 기억에 남기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첫번째는 아니었다. 다만 내 첫번째 입원은 다섯 살 때였으므로 내 기억에 전혀 없다. 장염에 걸려 닷새를 입원했는데 기운이 없어 잠만 잔 모양이다. 그래서 진짜 첫번째 입원은 건너 뛰고, 기억이 나는 두 번째 입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때는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몇 개월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이는 아직 엉금엉금 배밀이를 하고 어기적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시작된 복통으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집에는 아기와 남편이 있었으므로 남편은 나를 병원까지 태워다 주기가 좀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119에 전화를 했다. 대충 상황 설명을 하고 나자 구급차를 보내줄 테니 기다리라는 답이 왔다.
구급차를 기다리며 나는 옷을 입었다. 그러다 문득 보통 119를 불렀을 때 예상되는 상황을 떠올렸다. 집까지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나를 들것에 실어서 나가고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그런 적이 한번 있긴 했다. 등산하다 오른팔이 부러졌는데, 부러진 줄 모르고 있다가 밤에 통증이 시작해서 구급차를 불렀을 때였다. 그땐 팔이 부러졌는데 걸을 수도 없어서(너무 아프면 그렇게 된다) 집에까지 사람이 와서 나를 부축해서 휠체어에 실어 갔었다.
이번에는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배는 아팠지만 걸을 수는 있었으므로. 구급차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 나는 집을 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구급차 뒷문으로 탑승했다. 괜히 멀쩡한 데 타는 것 같아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구급차 안에 누워 있는데 같이 탄 대원(?)분이 나에게 이름과 증상 등등을 물으면서 차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누워서 이동하는 것은 팔이 부러진 이후 두 번째였으나 참 기분이 묘했다. 턱이 있을 때마다 몸이 출렁거리는 것이 영 불편하기도 했다.
그날 나는 응급실에 누워 수액을 맞고 귀가했다. 집에 갈 땐 남편이 데리러 왔다. 응급실에서는 그냥 장염이라고 했다. 뭘 검사한다고 피만 잔뜩 뽑아 갔다.
그러고 나서 나아지는 듯하던 배는 또다시 아파졌다. 얼마 후, 나는 또 구급차를 불렀고 또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 외에 한두명 정도 더 있었고, 너무 환해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다시 수액을 맞고 귀가했는데 몸이 심상치 않았다. 배는 계속 아팠다.
다음 날이 되자 열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배가 아프고 열이 나는 몸으로 아침부터 아이의 변 처리를 했다. 그날은 남편이 일찍 귀가한다고 말한 날이기도 했다. 남편이 오자마자 아이를 맡기고 나는 집 근처 내과에 갔다. 상황을 설명하자, 의사는 사려깊게 나를 살피고는 열을 쟀다. 목 안쪽을 살피기도 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몸이 들끓고 자꾸 목이 말랐다.
"열이 나는 것을 보니 장염은 아닌 것 같아요. 게실염일 수도 있는데... 일단 큰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찍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후에, 그런 판단을 해준 의사에게 큰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장염인데... 열이 나기도 하죠...' 그런 말을 해서 방치하다가 나중에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는데.
남편에게 사실을 알리고 주변 병원을 다 뒤졌으나 바로 진료를 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응급실을 갔던 병원에 전화를 하니, 지금 바로 오라고 했다. 나는 오후 두 시 경에 외과에 방문해서 바로 초음파 촬영을 했다. 내 병명은 초음파상으로 금세 나타났다.
"담낭에 돌이 있고 염증도 있네요."
그것이 열이 났던 원인이었다. 수술을 해야 하냐고 묻자 그래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느긋해 보였으나 누구보다도 빠르게 수술 지시를 내렸다. 내가 진료를 본 시간이 두 시인데, 세 시에 수술이 잡혔다. 나는 수술 전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 복도를 뛰어 다녀야 했다. 모든 행위들이, 내가 메디컬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는 달랐다.
검사를 다 받고 아기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다. 남편이 친정 부모님께 연락을 해서 부모님이 아기를 데리고 가기 위해 이쪽으로 오고 계셨다.
수술 준비를 마친 후에 나는 복도에 있던 침대에 누웠다. 드디어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그 장면이 시작되었다.
수술방의 양문이 열리고, 주인공처럼 침대에 누운 내가 그 사이로 들어갔다. 눈앞에 조명이 켜졌다. 링거를 통해 마취약이 들어갔다. 아프진 않을까. 수술은 잘 되는 거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의식이 꺼졌다. 그러고 나서 눈을 뜨니 나는 병실에 누워 있었다.
배가 욱신거리고 아파왔다. 복강경 수술이라 자국이 크게 남지는 않는다고 했다. 내 속에 연결된 관이 있었고 그곳으로 피가 섞인 물이 나와 종이컵에 담기고 있었다.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이후 나는 병원 복도를 걸어다니며 회복에 노력했고 며칠 지나자 몸은 좋아졌으나 공교롭게 생리와 수술이 겹친 관계로 빈혈이 왔다. 그리고 그 병원에는 수혈팩은 있었지만 철분팩은 없었다. 나는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 잡고 퇴원 후 내가 아이를 출산했던 산부인과에 들러 철분팩을 맞았다. 그래도 그 후 며칠은 머리가 너무나 심하게 아팠다.
후에 이 일을 생각하며 몇 가지 가정을 한다. 만약 그 작은 병원에서 열이 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그냥 장염약만 처방해 주었다면. 큰 병원에서 바로 진료가 불가능했다면. 진료해주신 분이 수술이 어려웠다면. 친정 부모님이 곁에 사시지 않아서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었다면. 산부인과에 철분팩이 없었다면.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꽤 많은 기적을 근거로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 하나만 어그러져도...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읽다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