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줘서 고마워

영화 '브로커' 감상 후기

by 나무나비

출연진보다 소재가 더 매력적이었다.

미혼모. 베이비박스. 보육원. 입양. 몇 년 전부터 이런 소재들에 끌렸고, 관련 다큐나 영화, 인터뷰 들을 찾아 보았다.

어느 다큐에서, 한 아이가 한 아름의 과자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 엉엉 운 적도 있다.

그 아이는 보육원에 사는 아이였는데, 한 가정이 아이를 입양하려고 몇 번 데리고 갔다가 결국 입양 포기 의사를 밝혔다. 그 후 아이는 입양이 안 되어서 상급 보육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 과자는 아이가 그 보육원을 떠나는 날 받은 선물들이었다.

자신이 결국 비슷한 보육원으로 간다는 것을, 아무도 자신을 입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모른 채 그저 받은 과자들을 안고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니까 눈물이 났다.


내가 이런 소재들에 끌리는 것은 무슨 내가 대단한 사명을 가졌다거나 해서는 아니다. 나는 대단한 사람은 못 되기 때문에. 그저 내 상처 때문에 조금 더 끌리는 것 같다.

내가 입양이나 보육원이랑 관련된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것은 내가 셋째 아이여서일 수도 있다. 당시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것이 슬로건이었고, 엄마 역시 이런 슬로건을 잘 따르려고 했으나 셋째 아이가 생기고 말았다.

솔직히 엄마가 피임을 잘 했으면 되는 것인데 안 했으니 엄마 탓(아니 부모님 탓)이다. 그런데 엄마는 뱃속의 나를 지우려고 했고, 아빠가 말려서 낳기로 했다.

아빠가 엄마를 설득한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둘째가 남자인데 혼자면 외로우니까 남자 아이를 하나 더 낳자."


그러니 당시에 초음파로 내가 남자가 아닌 줄 미리 알았다면 나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남자라고 철썩같이 믿었고, 낳고 나서야 비로소 내 성별을 알고 울었다고 했다.


낳지 않아야 했던 아이, 하지만 남자 아이인 줄 알고 낳았고, 낳아 보니 여자 아이였고, 그래서 엄마를 울게 만들었던 아이. 나는 그런 아이였다.

한 마디로 태어나면 안 되는 아이였다.

물론 엄마의 말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어."


지금은 이렇게 잘 성장해서 좋다는 것이 결론이었는데, 사람은 원래 좋은 것보다 안 좋은 것을 먼저 보기 마련이니까. 결론은 안 들리고 앞의 이야기만 크게 들렸다.

내가 그런 아이였구나.


성장 과정에서 사랑만 받고 컸다면, 그런 태어났을 때 이야기를 들었던 것쯤은 극복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집은 늘 불안했다.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고, 언니와 오빠도 못지 않게 다투었다. 그 속에서 나는 늘 괴로워했다.


어느 새 나는 내가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인간.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고, 태어났더니 다툼 속에 소외 되었고. 내 의식은 늘 외로운 곳을 홀로 내달렸다. 그곳은 다른 이들이 이를 수 없는 곳이었다.


몸은 자랐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이여서, 자라서도 나는 그런 특수한 소재들에 끌렸다.


내가 입양인이고, 내가 보육원에서 자랐고, 내가 베이비박스에 있었던 것 같고, 우리 엄마가 미혼모 같았다. (물론 진짜 이런 경험을 한 분들에 비교해서 생각하는 건 아니고, 그저 내 스스로 그렇게 느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볼 수밖에 없었다. 저 영화는 내 영화니까. 아이유가 아니라, 송강호가 아니라, 강동원이 아니라, 배두나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나오는 내 영화니까.


줄거리는 뻔하게 흐른다. 생각보다 지루했고, 울컥한 부분도 있었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았다. 나중에는 무슨 짜고 친 것처럼 모두 한 사람을 위해 헌신했다. 그 모습이 굉장히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별로 좋은 느낌의 영화는 아니라 생각하며 영화관을 나왔고, 유투브에서 영화 해설 채널을 찾아 보았다.


그리고 뒤늦게 그 장면이 생각났다.


어둠 속에서 아이의 엄마인 젊은 여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며 말한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한없이 작위적이고 오그라들고 굳이 없어도 될 장면. 영화에 있어서는 너무나 마이너스인 그 부분이 들어간 이유.


유투브 속의 영화평론가는, 어쩌면 그 장면 자체가 감독의 목적이었을지 모른다고 했다. 그 감독의 스타일도 아니지만, 그냥 말해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그가 영화를 위해 인터뷰했던, 보육원 출신의 사람들에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보육원에서 커다란 과자 봉지를 한 아름 들고 있는 아이에게, 그리고 그 아이의 친구에게, 그가 갈 새로운 보육원에서의 동료들에게, 그리고 그의 영화를 보는 모두에게,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에게.


태어나 줘서 고마워.


그것은 일면식도 없는 일본의 감독이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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