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옥수수와 만난 날

잘못된 만남이었던가

by 나무나비

나는 옥수수를 좋아한다.

달콤하면서도 알이 작고 고소한 그 맛을 좋아한다. 알알이 찐득하고 쫄깃한 질감을 사랑한다.

그런 나에게 그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초당옥수수'

조선 시대 초당(?)을 짓고 천자문을 읽어야 될 것 같은 이름을 가진 그 녀석은 실은 우리나라 녀석이 아니라고 한다. 이름은 초당인데 국적은 미국이다. 아메리카적인 느낌이 전혀 아닌 그 녀석은 SNS를 통해서 그 맛있음이 널리 전파되고 있었다.

그냥 옥수수도 좋아하는데,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도 환장을 할 정도로 맛이 있다니, 이건 꼭 먹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초당옥수수를 막연히 그리워하며(먹고는 싶은데 게을러서 그냥 생각만 하고 있었다)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간 마트에서(밥 먹으러 갔다) 나는 그 녀석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외관은 그냥 옥수수였다. 산처럼 쌓인 그 녀석은 온몸을 잔뜩 가리고 있었다. 녀석도 나와의 첫 만남이 쑥스러운 듯했다.


나는 한 녀석을 들어서 무작정 껍질을 벗겼다. 그런데 내 옆에 있는 분이 갑자기 자신이 들고 있는 옥수수를 내밀며 말했다.


"이거 벗겨 봐요."


벗기자, 꽤나 통통하고 튼실한 놈이 나왔다.


"이런 큰 놈으로 골라야 해요."


보니까 그분은 이미 열 개 가까이 초당옥수수를 벗겨서 봉투에 담아 놓고 있었다. 초당옥수수 고수였던 것이다. 나는 고수에게 초당옥수수를 고르는 비기를 하사 받고 계속해서 옥수수를 벗기다가 귀찮아서 그냥 아무 옥수수나 벗겼다.


집에 돌아온 나는 옥수수 하나를 꺼내 씻었다.

이놈이 신기한 것이 그냥 먹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옥수수를 그냥 먹어도 된다니. 보통은 먹으면 딱딱해서 못 먹지 않나.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콤했다.

과작과작하고 달콤한 맛. 솔직히 내가 기대한 옥수수의 맛은 아니었다. 나는 찐득하고 통통한 놈들을 좋아하니까. 초당옥수수는 통통하지도 찐득하지도 않고 좀 우스운 과자 같았다.

대중적이긴 한데, 옥수수 같지는 않은 맛.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기는 한데 나는 잘 모르겠는 맛.

그래도 생으로 먹었는데 의외로 맛있어서 놀랍긴 했다.


나는 옥수수를 전자렌지에 데웠다.

2분 정도 데우자 옥수수는 아주 뜨거워졌다. 다시 한 입 베어 물었다.

이것이다.

나에게는 생옥수수는 맞지 않았다. 데워 먹어야 한다. 뜨끈한 질감이 살아 나면서 알알이 옹골찬 느낌이 들었다. 물론 생옥수수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다른 옥수수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


옥수수는 총 4개를 샀다. 사면서 너무 불길한 숫자가 아닌가 싶었지만 더 옥수수를 벗기기가 귀찮았다. 그리고 차를 가져오긴 했지만 차에서 내려서 들고 걸어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너무 많이 사면 안 되었다.(물론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차에 실으면 되지만 아까 말했듯이 나는 게으르다)

나는 그 4개 중의 한 개를 맛있게 먹어 치웠다. 좀 아쉬웠지만 조금 있다가 저녁을 먹어야 하므로 참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가 자는 밤.

나는 두 번째 옥수수를 꺼냈다.

그러자 갈등이 되었다. 나는 너무나 배가 고팠고, 집에는 먹을 것들이 좀 있는 편이었다. 오늘 마트를 다녀왔으니까. 그중 가장 침이 고이는 것은 비빔면이었다. 심지어 우리집에는 골뱅이도 있었다! (비빔면과 골뱅이가 얼마나 찰떡인지는 먹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비빔면과 골뱅이가 있는데 초당옥수수라니. 어떤 사람은 죽어도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선택지로는 떡볶이도 있었다. 떡볶이는 떡과 소스가 다 포장이 되어 있는 것으로 라면처럼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솔직히 고민했다. 떡볶이를 먹을 것인가, 비빔면과 골뱅이의 환상적인 하모니를 입으로 접할 것인가, 그냥 초당옥수수를 먹을 것인가. 맛과 배부름의 정도, 그리고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꼼꼼히 비교까지는 아니고 대충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았다. 그 결과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 귀찮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빔면은 삶고 나서 다시 그것을 찬물에 헹구어야 한다. 떡볶이는 냄비에 물을 넣고 끓여야 한다. 초당옥수수는 날로 먹어도 괜찮다. 초당옥수수 당첨.


하지만 왠지 날로 먹고 싶지는 않아서 전자렌지에 3분 데웠다. 그러고 나니 버터를 발라 먹으면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듯했다. 우리집 버터는 내가 소분해서 냉동해 놓았다. 그 중 하나를 꺼내서 뜨끈한 옥수수에 발랐다. 바르고 나서 먹으니 뭔가 느끼하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에어프라이기에 돌렸다.


그렇다. 가장 귀찮지 않은 음식을 찾아 초당옥수수를 선택했으면서, 나는 괜히 안 해도 될 짓을 하면서 더 귀찮게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비빔면 헹구기 싫고, 떡볶이 냄비 올리기 싫었으면서. 버터를 꼼꼼히 발라서 에어프라이기를 돌리고 버터 때문에 미끌거리는 손을 여러번 닦고.


나는 아직도 초당옥수수를 먹지 못했다. 비빔면을 먹었다면 아까 먹었을 것이요, 떡볶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그냥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비빔면 봉지를 뜯을까 싶다) 처음 5분 에어프라이기에 돌렸는데 그다지 변화가 없어서 다시 5분을 돌렸고, 그래도 그대로여서 5분을 더 돌렸더니 알알이가 다 쭈글쭈글해졌다.


그냥 이런 상황이 재밌어졌다.


뭐가 싫어서 그런 선택을 했는데, 선택을 하고 보니 그 싫은 것을 내가 하고 있더라는. 세상에 이런 일 많지 않은가. 집안일이 너무 싫어서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내가 그 집안일을 또 다 하고 있더라.(갑자기 슬픈데)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이 꼭 원하는 대로만 사는 것 같지도 않고, 또 그 원하지 않은 삶도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다.


그 사이 나는 초당옥수수를 다 먹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배가 고프다. 왜 하나를 다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것인지. 옥수수알이 좀 쭉정이처럼 생겼는데 그래서 그런 것인지. 무언가를 먹었는데 배가 더 고픈 이런 슬픈 상황 속에서, 새벽 두 시가 거의 다 되었는데 또 다른 무엇인가를, 그것도 초당옥수수보다 귀찮은 무언가를 해 먹어야 하는 것이 참 싫다.


초당옥수수는 충분히 나를 귀찮게 했을 뿐 아니라, 내 배고픔도 채워주지 못했다. 최악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늘 선택을 하고 살고, 그 선택이 다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나는 지금 또 무언가를 먹을지, 아니면 그냥 배고픔을 참고 잠이 들지(하지만 그러진 않을 거 같다. 그러기에는 배가 너무 고프다.)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선택의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그냥 그것이 삶이 아닌가 한다. 선택을 하고하고하다 보면 어느새 죽음의 문턱에 닿아 있겠지. 나의 마지막 선택은 과연 무엇이 될까.


삶 하니까 삶은 계란이 먹고 싶다. 지금은 무엇이든 다 먹고 싶다. 초당옥수수가 아니라 소화제를 먹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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