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닌

'안쪽'에서

by 나무나비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집이었으면 좋았겠지만, 하필 잔뜩 기대를 하고 간 한 작가의 출간기념회에서였다. 이미 병원은 문을 닫았을 시간이고 주변은 말을 하고 있는 작가와 사회자를 제외하고는 조용하였다. 배를 문질러 주었으나 아이는 아프다면서 계속 찡찡거렸다. 119라도 불러야 하나, 병원도 다 문을 닫았을 시간인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아이를 세워놓고 배가 많이 아픈 거냐고 묻는데 이야기를 하던 작가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어떠냐고 그가 나에게 권하였다. ‘안쪽’이라. 그곳은 내가 출간기념회에 왔을 때부터 그가 나에게 가라고 권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았었다.


출간기념회의 주인공인 작가는 나의 글쓰기 선생님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몇 달 전, 나는 온라인으로 한 글쓰기 수업을 들었고 그곳에서 작가를 만났다. 작가는 꾸준히 글쓰기 교실을 열고 있었고 누적된 수강생은 100명 남짓이나 되었는데, 이번 출간기념회는 그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선착순으로 신청자를 받은 것이었다. 아무나 갈 수 없는 출간기념회라는 생각에 꼭 가고 싶어서 나는 아이까지 데리고 가는 무리수를 두게 되었다.

나는 출간기념회가 열리는 장소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막 1부 순서인 대담이 시작되려고 하는 때였다. 작은 공간에는 의자들이 놓여 있고 그중의 반 정도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들의 앞쪽에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작가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작가가 아이를 보더니 “여기 안쪽으로 오는 게 낫지 않아요? 이쪽에도 자리가 있는데.”라고 말하였다. 그가 말하는 안쪽이라는 공간은, 작가와 사회자가 앉은 공간 뒤쪽을 말했다. 안쪽을 흘긋 보니, 그곳에는 의자도 놓여 있지 않고 사람들도 없었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쪽이 ‘이만하면 괜찮은 출간기념회지’라고 말하고 있는 곳 같다면 안쪽은 ‘출간기념회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지’라고 말하고 있는 곳 같았다.


만약 그곳에도 이쪽처럼 의자가 놓여 있고 신경을 써서 ‘준비한 공간’ 같이 느껴졌다면 나는 이동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그곳은 그저 이쪽을 준비하기 위한 ‘비품실’ 내지는 ‘준비실’ 같이 보였다. 전혀 꾸며지지 않은, 그저 꾸미고 난 나머지 공간. 나는 그곳으로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저쪽은 출간기념회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 아닌 것 같은데, 가도 되나 싶어서였다. 그리고 이곳에는 앉아 있는 사람이 다수 있었던 반면 그쪽에는 앉아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더 가기가 어렵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는데 출간기념회 1부 순서인 작가와의 대담이 시작되었고 나는 결국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대담을 듣게 되었다.

초반에는 아이도 낯설어서 그런지 조용히 있어서 나도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역시 아이였다. 십 분 정도 지났을 때 엉덩이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계속 조용히 시키다가 가져온 젤리를 하나씩 먹이기 시작했다. 탈이 난 것은 젤리를 반쯤 먹였을 때였다. 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조용한 이곳에서 대체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웬만한 병원이 다 문을 닫은 이 밤에 배가 아프다는 아이를 데리고 이곳에서 나간다고 해도 뾰족한 해결책은 찾기 어려울 듯했다. 그때에 작가가 구원처럼 ‘안쪽’을 이야기했다.


나는 작가의 두 번째 요청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아니, 가지 말라고 막아도 가야 할 판이었다. 일단은 어디든 아이를 제대로 살피고 조치를 취할 곳이 필요했다. 나는 갈까 말까 망설이던 ‘안쪽’에 드디어 발을 들였다. 그저 준비실이나 탕비실과 같은 곳이라 생각했던 공간은 내 생각과 전혀 달랐다.


처음 공간에 발을 들였을 때 느낀 것은 무질서였다. 의자가 놓여 있는 공간이 가지런하고 정돈된 느낌이라면, 이곳은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테이블도, 소파도, 그저 제멋대로 놓여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있었다. 출간기념회의 질의응답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은 출간기념회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참석자들을 돕기 위해 와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대담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나에게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이의 상태를 알고는 더 도움을 주려고 했다.


아이의 복통은 그 ‘안쪽’ 공간에 있던 화장실에서 해결이 되었다. 아무래도 이곳에 오기 전에 급하게 먹고 온 돈까스가 문제를 일으킨 듯했다. 세네 번 정도 설사를 하고 난 아이는 이제 괜찮다고 했다. 그 시간에 대담은 마무리가 되었고 참석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2부가 시작되었다. 각종 음식들이 차려진 넓은 테이블에 둘러 앉은 사람들은 자기 소개를 했다. 와인을 비롯한 음료를 마시는 속에서 분위기는 점차 화기애애하게 변해갔다. 내가 참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그 속에서 작가 역시 허물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집에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복통은 가라앉았으나 그렇다고 설사 후에 기진맥진한 아이를 이곳에 계속 있으라고 할 수는 없었다.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서러운 기분을 느꼈다. 함께 음식을 먹으며 웃던 사람들. 나도 그들 가운데 속하고 싶었는데.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 내가 그곳에 있었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그 이야기는 후에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나는 부질없는 생각들로 스스로를 더 괴롭혀댔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수놓았다. 돈까스를 먹게 해서 아이를 배탈 나게 했다는 죄책감부터 시작해서, 아이 때문에 대담에 방해가 되었을 것 같아 미안한 마음, 대담도 그리고 2부 순서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이럴 거면 왜 굳이 지하철을 타고 그곳까지 갔을까 하는 후회까지. 총천연색의 감정의 군단이 나를 사방에서 찔러대는데 도대체가 잘 수가 없었다. 나는 쌕쌕 소리를 내며 자는 아이를 두고 이불 속에서 기어 나왔다.


출간기념회를 소재로 글을 쓰려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것을 이렇게 빨리, 당일에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나의 감정을 두서 없이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출간기념회를 기대했던 마음과, 아이의 예상치 못한 배탈, 화기애애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 그곳에 속하지 못한 아쉬움을 가득 안고 돌아와야 했던 일들까지. 주제 같은 것은 알지 못했다. 다만 나에게는 숨쉴 곳이 필요했다. 내가 겪고 느꼈고 당했던 곳을 벗어나, 그것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고 쉴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방향도 목적도 없는 글을 써내려 갔다.


그러다가 문득, 작가가 처음에 가라고 했던 ‘안쪽’이 생각났다.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가도 될까’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출간기념회 장소 같지 않았던 곳, 그래서 왠지 가기가 망설여졌던 곳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곳에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있는 이곳에서 문제가 터졌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배탈이 났고, 이곳에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다. ‘안쪽’에 가도 이게 해결이 될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야 했기에 나는 이동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몸을 움직였을 때 도움의 손길을 받았고 아이는 전보다 더 안정되었고 결과적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글을 쓰면서, 내가 세상의 ‘안쪽’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출간기념회 공간의 ‘안쪽’에서는 아이의 문제를 해결했다면, 지금 내가 있는 이 세상의 ‘안쪽’에서는 세상에서 풀리지 않았던 내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나는 그 후로 며칠 동안 글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면서 나만의 ‘안쪽’에서 나의 문제를 바라보았다. 총천연색 감정이라고 했던 것은 실은 하나의 감정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그것은 아이를 배탈 나게 만든 죄책감이었다. 결국 배탈로 인해 모든 것이 망쳐지게 된 데다가, 아이도 고생을 했으니 아이를 그렇게 만든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답을 알게 되니 마음이 오히려 차분해졌다. 죄책감은 내 마음의 기저에 깔린 근원적인 감정이라, ‘또 얘였구나’ 생각하니 웃음도 났다.


‘안쪽’은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으면 있는지 알 수가 없는 공간이다. 나도 작가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생의 ‘안쪽’도 일부러 찾지 않으면 결코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찾은 사람과 찾지 않은 사람의 삶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난 사유의 공간, 그곳에서 반성하고 되새기며 자신과 타인에 대해서 곱씹어보는 사람은 반드시 그 삶이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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