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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Jan 26. 2024

조의 이야기

작은 아씨들을 읽고

이 진부한 제목의 글을 과연 누가 읽을지 알 수가 없다. 나조차도 다시 클릭하지 않을 것 같은, 고민 없이 지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 제목을 이보다 더 잘 지을 수도 없을 것 같다. 나는 '작은 아씨들'이라는 책을 읽고 그중에 조의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에.


'작은 아씨들'은 워낙 유명하고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각색이 되었으나 실제 1000페이지 가량 되는 그 책을 다 읽은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네 자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은 이야기, 그들이 이웃들을 초대하고 하는 연극의 내용, 그들이 놀러가서 다른 이들과 놀면서 지은 이야기 등 상당히 지루한 부분들이 가감없이 펼쳐진다. 그럼에도 책을 끝까지 붙들 수 있었던 것은 이웃 주민이자 부자이자 잘생기고 착하기까지 한 '로리'라는 남자의 출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역시 '작은 아씨들'에서 연애 이야기를 빼면 서운한 거다.


하지만 나는, 그중에 조의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되었다. 물론 나도 초반에는 로리가 과연 네 자매 중 누구와 이루어질 것인가를 생각하며 집중을 했지만. 그러면서 어쩌면 이것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효시일지도 모른다. 누가 **의 남편인가,를 찾는 것의 원조일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내 기대와는 달랐던 사랑의 짝대기에 다소 실망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뒷부분에서는 오로지 조의 삶에 집중을 하게 되었다.


조는 무척 매력적인 여성이다. 당시의 관점으로는 '칠칠맞고 여성 답지 못하다'라는 말을 들을 만한 여자이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좋아하는 것도 확실하다. 그녀는 글을 읽고 창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집안일은 젬병이지만, 그녀의 특별한 능력 덕분에 그녀는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단순히 결혼을 해서 배우자의 곁에서 사는 것이 지루하다고 생각한 그녀는 어쩌다가 신문에 투고를 하게 되고, 글이 실리고 돈을 받으면서 새로운 삶의 매력에 빠진다. 


나 역시 작가로 살면서, 처음 계약을 하고, 돈을 벌었던 적이 있다. 유치하다 생각한 상업 소설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쓰고 보니 유치한 건 그 글들이 아니라 그 글들을 함부로 비판했던 나였다. 세상 어느 창작물도 쉽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단지 몇 백 원에 불과한 첫 수익을 확인하며 확실히 배웠다.


조는 나보다는 확실히 실력이 뛰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조의 모델은 실은 이 '작은 아씨들'을 쓴 작가라고 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수없이 각색이 된 이 책을 쓴 작가의 모델이 조라니, 어쩌면 조가 신문에 투고를 하고 돈을 번 것은 다 작가의 경험담일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어쩐지 경험이 매우 생생하다 생각했었다. 조는 처음부터 인정을 받았고, 무명 작가임에도 상당한 돈을 벌었다. 확실히 글 쓰는 재주는 있었던 셈이다. 


중간에 이러저러한 일을 겪고, 조는 우연히 신문에서 상업 소설을 보게 된다. 그때에는 드라마가 없으니 신문의 상업 소설이 그 자리를 대신했던 모양이다. 교훈도 없고 남는 것도 없지만, 끝없는 막장으로 사람들을 몰입시키는 그 글들을 보고 조는 자신도 충분히 그렇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조는 당장에 비슷한 소설을 써서 투고하고, 상당한 돈을 받는다. 조는 그렇게 상업 소설 작가가 된다. 그러나 목사이면서 엄격하고 진중한, 그리고 분명히 상업 소설 같은 것은 읽어본 적도 없는 아버지와 사려 깊은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는 못한다.


나 역시 내 필명을 어디에서 말하지는 않는다. 하는 일이 뭐냐고 하면 글 쓴다고 하지만, 그 글이 뭔지 이야기한 적도 별로 없다. 몇몇의 친구들에게나 말했을 뿐. 내 부모조차 내 글을 찾아 읽은 적은 없다. 그것이 나는 이쪽에 종사하는 상업 작가라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어느새, 내가 내 글을 부끄러워하면서 계속 글을 쓰는 삶이, 비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글들을, 단지 돈 때문에 쓰는 거라면. 그런 삶이라면. 시그니엘에 살고 매일 호텔 뷔페나 고급 레스토랑 수준의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그 영혼은 외로울 것이 아닌가?


조 역시 같은 것을 느낀다. 자기 영혼에 이상이 생겼다고 느낀 것이다. 그 무렵, 조와 썸을 타기 시작한 남자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 남자는 꽤나 엄격하게 조에게 그 사실에 대해 말한다. 요즘 세상이라면 그게 무슨 개뼉다구 같은 말이냐며 조가 남자를 뻥 차버렸겠지만, 그 시대는 지금 시대와 달랐고,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미덕이었기에 조는 그 말을 듣는다. 그리고 조 역시,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므로 더는 미련 갖지 않고 상업 소설을 쓰는 것을 중단한다.


그래서 결말은? 조는 더는 상업 소설을 쓰지 않는 대신 진실한 자기 고백적 소설을 써서 대박이 난다...는 상투적인 결론이 아니라 조는 그 썸 타던 남자와 결국 결혼해서 친척에게 물려받은 거대한 저택에 일종의 고아원을 만들어 아이들을 그곳에 놓아두고 키운다. 아니 글은? 조가 글을 써서 대박이 난다는 결론은 없다. 대신에 조는 자신의 영혼에 도움이 될 만한, 진실한 글을 쓰는데 그 글을 보는 독자들은 바로 가족들이다. 가족들에게도 보여주기 싫었던 상업 소설을 쓰는 대신, 조는 자신이 진짜로 쓰고 싶었던 글을 써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주는 것이었다.


조의 결말은 대박 작가가 아니었다. 어디 문학상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조의 결말은, 그의 글을 읽고 진정으로 감동하는, '독자' 몇몇을 얻은 것이다. 그게 뭐 대수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내 독자를 얻는다는 것, 내 글을 좋아하고 그 글을 곱씹어 읽으며 차기작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 작가에게 그보다 더 풍성한 일은 없을 것이다.


작가로 살아보니 알겠다. 내 삶으로 나는 글을 쓰고, 내가 쓴 글로 나는 내 삶을 만든다. 하지만 최근의 내 삶은 풍요로운 듯 하면서도 피폐했는데, 그것은 내가 지난 몇 년 간 '돈이 되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몰입해서 남들이 많이 볼만한 글을 쓰느라 스스로를 혹사했고, 그것 때문에 내 삶도 영향을 받아 쪼그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쪼그라든 삶은 또다른 피폐한 글을 써냈고, 몇 번의 반복을 통해 나는 글을 쓰는 일에 지쳐버리고 말았다.


내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내가 겪은 일이 비단 현대의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과거에도 그런 일들은 있었고, 수많은 작가들이 돈을 받으며 '상업소설'을 써댔다. 물론 글에 어떤 교훈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상업 소설이라고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오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 소설들이 쓰는 작가를 지치게 하고 그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면, 작가를 위해서도 조금은 다른 선택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십여년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직장 내 괴롭힘과 과도한 상사의 요구에 지쳐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우울증이 극에 달해 있었고, 아침만 되면 차도에 뛰어들고 싶었다. 직장을 그만 두고 나서 며칠은 날아갈 듯이 기뻤다. 다시는 어떤 직장도 다니고 싶지 않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언가 할 일을 찾아야 했다.


몇 년 간,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글을 읽고 글쓰기 모임에 나가서 지냈던 나에게 남편은 집안일을 요구했다. 자신은 나가서 일을 하니까, 나는 집안일을 잘 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돈을 쓰는 것은 늘 남편에게 눈치가 보였다. 나는 소설 쓰기 모임에서 우연히 웹소설의 존재를 알았다. 웹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것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바로 '상업적인' 소설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집을 부렸고, 그런 소설도 좋아해주는 사람은 있었지만 수익은 미미했다.


몇 년 후에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우연히 내 소설을 잘 봐준 사람이 있어 좋은 기회를 얻고, 그 소설로 꽤 돈을 벌게 되었다. 그러니 돈 버는 재미가 처음으로 생겼다. 한 달에 몇 백이 되는 돈이 생기는데, 어디 직장에서 눈치보지 않고 집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 돈을 버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리고 이 삶을 놓치고 싶지가 않아졌다.


처음부터 내 영혼을 팔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돈의 맛을 알고 나니, 그리고 쓰는 재미를 알고 나니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쓸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 이후에 그렇게 잘된 소설은 드물었지만 그보다 조금 못 하더라도 그래도 꽤 벌었고, 그 버는 돈으로 나는 자유를 누렸다. 더는 남편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내가 꼭 조의 결론을 따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조가 했던 고민, 그리고 '작은 아씨들'의 작가가 했던 고민을 나 역시 공유한다는 것에서, 지금의 내 상태를 진단하고 결론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더는 내 지금 상태에 끌려 간다면, 돈을 버는 것의 재미에 빠져서 다른 더 좋은 것을 놓친다면, 나는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기를 헛되이 낭비하는 것이기에. 그리고 내가 인생의 마지막 날에 돌아볼 것들은 내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따위가 아니라, 내가 어떤 글을 썼는가 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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