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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Dec 13. 2023

나는 내 이야기를 잃어버렸다

보통 작가 하면 가난한 직업이라고들 많이 이야기가 되어 왔다. 이제까지는 그랬던 것이 맞다. 작가는 글을 쓰는 것이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 글로 돈을 버는 '추잡한 욕망' 따위는 버려야 하고 가난함을 천형처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웹소설 작가'는 좀 다르다. 보통 '웹소설 작가'라고 하면 그래서 유명한 작품이 뭐가 있고, 그보다 중요한 월에 얼마나 버냐는 질문이 뒤따른다. 물론 이것을 얼굴 보고 하는 관계에서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는다. 하지만 웹소설로 얼마 벌기, 등등의 책들이 나오거나 익명 커뮤니티 등에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활발히 교환되는 것을 보면 그러한 숨겨진 욕망을 볼 수 있다. 즉 그냥 소설은 돈과 상관 없는 자기 표현이지만 '웹소설'은 반드시 돈을 벌어야 하는 상업적인 소설인 것이다.


내가 웹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나는 원래 일반 소설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투고를 해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신춘문예에 작품을 내 보려고 해도 도통 신춘문예 통과했던 작품들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신춘문예에 통과했다는 작품을 읽고 또 읽어도 이해를 할 수 없으니 내가 그런 작품들을 쓸 수가 없었고, 스터디를 하면 이 작품 저 작품 좋았다고 하는데 나는 그 작품이 왜 좋은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작품을 쓰니 나는 늘 모자란 인간인 것 같았고 모두가 달성해야 할 일정 기준을 넘지 못하는 인간인 것 같았다.


하지만 웹소설은 이해가 되었다. 상업적이든 뭐든, 유치하든 뭐든 일단 이해가 되니 내가 쓸 수가 있었다. 그래서 썼다. 글을 쓰고 싶은데 이해는 해야 쓸 수 있으니까. 처음에는 그냥 이것저것 짜깁기를 해서 썼다. 스토리도 없고 의미도 없었다. 그래도 막판에는 독자들이 좀 생겼고, 대부분이 욕이었지만 내 작품을 보고 무언가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하나 둘 작품을 써 나가면서, 나는 내 작품을 쓰는 재미에 푹 빠졌고 소수였지만 독자들이 생긴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반응은 별로 없어도 출간을 하는 것도 좋았다. 상상만 했던 주인공들을 일러스트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재미 중의 하나였다.(대부분의 유료 연재에는 일러스트 표지를 한다, 물론 안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작품을 계속 써 나가고, 출간 이력이 늘어갈수록 나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기 시작했다. 바로 동료 작가들과의 비교였다. 나와 비슷하게 출발한 작가들이 좋은 평가를 얻고 승승장구하는데 나는 만날 그 모양이고, 여전히 반응은 밑바닥인 것을 보면서 나는 점차 처음 목적이었던 '글쓰는 재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스토리를 짜내고 대사를 만들고 작품을 엮어가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그것이 원하는 만큼의 반응을 얻어내지 못하면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작품을 쓰는 초반에는 상업적인 성공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작품은 거의 보지 않았다. 그러나 상업적인 성공을 점점 바라게 되고 다른 작가들처럼 날개를 달기 원하니 다른 작품을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작품처럼 쓰려면 어떻게 하지' '보통은 이런 트렌드들이 있는데 그런 것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독자들이 열광하는 장면은 어떻게 쓰면 좋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쓴다고 원하는 상업적인 성공을 얻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 처음에 정말 순수한 나로 돌아가, 내가 원하는 작품을 쓸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작품은 심하게 말하면 쓰레기 같았고, 남들이 열광하는 작품은 제대로 된 작품 같았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갇힌 나는 점차 나를 잃어갔다. 내 작품에는 내가 없었고, 양산된, 똑같은 스토리 속의 똑같은 대사만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나는 나에게 질문해 보았다. 내가, 남들과 똑같은 작품을 써서 성공한다면, 그리고 계속 그런 작품만 써댄다면 나는 스스로에게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한 작품으로 몇 억을 벌고, 그것으로 차를 사고 집을 사서 호화롭게 산다면. 나는 그런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내 입맛이 아닌 다른 입맛으로 억지로 생산한 작품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작품을 쓰고 사는 삶은 아무리 호화로운 집에 살아도 지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웹소설에 발을 담갔기 때문이었다.


그래 돌아와 다시 내 이야기를 쓰려고 보니, 이제는 내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는 출판사와 계약을 하는 것, 그리고 플랫폼의 심사에 합격하는 것은 크게 기뻐할 일도 아닌 그저 작품을 쓰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 되었는데(물론 그 심사의 단계가 여러 단계가 있는데 내가 통과하는 단계는 아주 최고의 단계는 아니다), 그런 글을 쓰는 나에게는 내 이야기가 없으니 그야말로 굉장히 곤란한 지경에 빠진 것이다. 매일 글을 쓰고, 스토리 구상을 하고, 대사를 써대면서도 거기에는 내 영혼이 없으니 나는 참으로 답답한 삶을 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물론 모든 것에 백프로는 없으므로, 상업적인 글에 내 스토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내 스토리만으로 꽉꽉 채워진 글이라도 상업적인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비율에서 내 스토리가 현저히 낮으면 나는 굉장히 힘들어 하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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