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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Mar 17. 2024

웹소설 작가에게 질투란

처음 웹소설에 도전할 때만 해도, 출판사와 계약해서 출간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래서 무료 연재 사이트에서 연재를 하다가 출판사로부터 출간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그리고 그 메일에서 내게 '작가님'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너무나도 기뻤다. 출판사 담당자와 통화를 하고, 친절한 음성으로 '작가님'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나는 마치 내가 대단한 무엇이라도 이룬 것처럼 뿌듯했었다.


처음 '작가님'이라고 불리고 나서 꽤 시간이 흘렀다. 나는 많은 책을 출간했고, 그 책의 대부분이 그다지 흥행에 성공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제 나를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웹소설 작가이지만, 그다지 유명한 작가는 아닙니다. 말해도 잘 몰라요." 뒷부분은 굳이 말을 안 해도 되는 것인데 굳이 말하는 이유는, 내가 웹소설 작가라고 하면 백에 백일은 이렇게 묻기 때문이다. "필명이 뭐예요?"


내 필명을 눌러 보았자 작품만 주르륵 나올 뿐 그중에 아는 작품 하나 나오지 않을 텐데, 말해 무엇 하나. 별로 유명하지 않은 웹소설 작가의 고충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어느 직업을 밝혀도 "그다지 유명한 사람은 아닙니다"라는 말이 따라붙지는 않는다. "나는 교사예요. 근데 그다지 유명한 교사는 아닙니다." 이 말도 이상하고, "나는 약사예요. 근데 그다지 유명한 약사는 아닙니다만." 이 말도 굳이 왜 하나 싶은 말이다. 교사나 약사는 유명해지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웹소설 작가는, 그 말을 꼭 덧붙여야만 할 것 같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웹소설 작가는, 같은 작가 무리에서도 보통은 어깨가 반쯤 굽어 있다. 그래서 내가 일주일 세 번 필라테스를 하는 데도 몸이 이 모양인 것 같다. 나하고 같이 출발한 작가 커뮤니티가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한 작품 쓰고 주욱 쉬는 작가도 있고 여러 작품을 꾸준히 출간하면서 번번이 잭팟을 터뜨리는 작가도 있다. 약간의 기복은 있지만 최근에 터진 작가도 있고, 다양한 출판사와 계약하면서 꾸준히 평타 정도의 작품을 내는 작가도 있다. 


실은 작가 커뮤니티에서 가장 말이 많은 부류는 꾸준히 내면서도 성적이 좋은 작가들이나, 그것이 아니면 아주 오랜만에 출간하는 작가들이다. 나처럼, 꾸준히 내는 데도 번번이 성적이 절망적이거나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정도는 입을 다문다. 꾸준히 내면서도 성적이 좋은 작가는 입을 다물 필요가 없고, 아주 오랜만에 출간하는 작가는 작품을 내지 않은 까닭에 성적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출간을 했는데도 성적이 이 모양인 쭈그리 작가들은 슬슬 어깨를 움츠리고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다.


실은 계속 작품을 내면서도 작품 성적도 좋아서, 같은 커뮤니티에 있을 뿐이지만 아마 매달 버는 돈은 넘사벽일 잘 나가는 작가들을 나 같은 작가는 감히 질투할 수 없다. 이 작가들은 출판사에서 받는 대우도 좋은 데다 선택권도 넓다. 물론 어려워진 시장 탓에 모두가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통장을 까 보면 나 같은 작가들은 '아니 그 정도인데 무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기에 나는 할 말이 없다. 열심히 하고 잘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유재석 연봉을 누구도 탓할 수 없듯이.


하지만 나보다 더 게으른 것 같은 작가들이 치고 나갈 때는 어쩔 수 없이 눈이 돌아버린다. 물론 게으르다는 것도 내 기준이요, 그들의 입장에서는 출간만 하지 않았을 뿐 1000개가 넘는 미공개 폴더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내 기준으로는 나보다 출간도 덜한 작가가 좋은 대우를 받거나 더 잘 될 것 같은 싹이 보이면 어쩔 수 없이 속이 끓어오른다. 그것은 나도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다.


작품을 내면 바로 랭킹에 오른다. 잘 되는 작품은 론칭날 부동의 1위를 하고 그 후로도 꾸준히 상위권에 있다. 그런 작품을 하나라도 내면, 확실히 주변의 공기가 달라진다. 한뼘쯤 키가 큰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런 작품은 드물다. 여러 기성 작가들이 동시에 출간을 해도, 그런 작품들은 한두 작품이요 대부분의 작품은 잠깐 상위권을 찍었다가 서서히 중위권으로 내려앉는다. 그리고 쥐도새도 모르게 출간되었다 사라지는 작품들도 무수히 많다.


그런 시장이니, 서로 보이지 않게 질투하고 눈치를 보고 죄없는 앞가슴만 쥐어 뜯다가 하얗게 날밤을 새워버리는 작가들이 집집마다 제 사정을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피튀김. 작가들의 삶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질투를 한다. 그것이 나의 힘인 것처럼, 하지만 결국은 '내가 글을 그지같이 써서'라는 결론에 다다른 나는 내 죄없는 머리털만 쥐어 뜯으며 날밤을 밝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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