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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Aug 25. 2024

반응이 전부는 아니다

그 사람의 반응으로 나의 행동을 평가하지 말자

굉장히 오랜만에 그 사람을 만났다.


인사를 한 것도, 그렇다고 따로 말을 섞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존재하고 내 눈에 자꾸 보이는 것만으로도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와 충분히 인사를 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지만 그는 물론 먼저 나에게 인사하지 않았고, 나 역시 인사하지 않았다. 그러고 집에 돌아오고 나니까 후회가 되었다. 그의 반응에 개의치 말고 그냥 인사는 하고 올 것을 그랬다고.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의식하면서도 굳이 인사하지 않고 돌아온 내 행동이 후회가 되었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화를 내든 무표정으로 있든 아니면 아주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며 나를 노려보든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반응으로 내 행동이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웃으면 내 행동이 좋은 행동이고, 그가 찌푸리면 내 행동이 나쁜 행동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반응에 지나치게 얽매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인사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 내가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된 계기는, 내 말 때문이었다. 아이들끼리 충돌이 있었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의 아이가 내 아이를 먼저 건드린 정황을 이야기하였다. 그는 자신의 아이가 우리 아이에게 당하고 있는 것만 보았었다. 그것에 대해서 나는 충분한 사과를 하고 해결을 지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먼저 있었던 정황을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번에 그 말을 듣자마자 불쾌한 낯빛으로 '그래도 우리 아이는 자신의 아이를 괴롭혔으니 잘못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나는 물론 그렇다고 설명했고, 나중에 메시지를 통해서도 다시 사과를 전했다. 메시지를 통해 그 역시 사과를 전해 왔으나 다시 만났을 때부터 그는 전과는 다른 태도로 나를 대했다. 그것이 벌써 몇 개월이 지나고 있다.


나는 그에게 그 정황을 이야기 한 것을 후회하였다. 열 번, 백 번, 수천 번을 후회하였다. 만약 그 일이 없었으면 그가 내게서 돌아설 일이 없었을까. 그와 나는 그 전에는 그래도 서로 챙겨주면서 잘 지내는 사이였는데. 그 말만 아니었으면 이 관계는 틀어지지 않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후회하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그 아이가 먼저 잘못한 것이 아니냐고 따진 것도 아니고, 내 아이 잘못이 맞다고 사과하고 아이에게도 사과를 시키고 그 일이 일단 해결이 났다고 생각했기에 그 정황을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만약 그가 나였다면, 나는 먼저 있었던 정황을 몰랐다는 것을 밝히고, 내 아이도 잘 단속해서 앞으로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상대와 틀어질 것도 없이, 잘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를 짓고 더는 여기에 대해 마음을 소비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일에 대해서 그는 불쾌함을 내비쳤을 뿐만 아니라, 서로 사과를 하고 마무리를 한 후에도 끝끝내 그 감정을 가져갔다. 나중에 다른 지인을 통해 들은 바에 따르면 그가 아직도 내가 자신의 아이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을 안 풀고 있으며, 몇 개월이 지나도록 나에게 쌀쌀맞게 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그러한 태도로 말미암아 내 행동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한 행동이 정말 그럴 일인가?


누구를 때린 것도 아니요, 공격적인 말을 한 것도 아니요, 밑도 끝도 없이 화를 낸 것도 아니다. 상대를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괴롭힌 것도 아니요, 뒷담화를 하는 등 악질적인 행동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그가 모르는 아이의 상황이 있어 설명을 했을 뿐이다. 물론 그 상황이 그런 말을 하기에 적절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런 말을 듣기에 그가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몇 개월간 감정을 가져가면서 사람을 미워할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행동은 도가 지나치다. 당시에는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며칠이 지나면 충분히 털어버릴 수 있는 감정이다. 아니면 차라리 내게 전화를 해서 '이러이러해서 기분이 별로다. 우리 만나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적극적으로 해결의 의지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는 제 감정을 털어내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그 감정을 품고 나에게 대놓고 티를 내고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이런 생각이 뒤이어 들었다. 나는 왜, 그의 반응으로 나의 행동을 평가했는가. 내가 한 행동이 아무리 생각해도 객관적으로 그다지 악한 행동이 아님에도 그가 그것으로 인해 몇 개월 간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으로 나의 행동이 아주 악한,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할 그런 행동이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못된 짓을 남편에게 수없이 하였지만, 남편은 나쁜 감정을 마음에 오래 담아 두는 사람이 아니라 쉽게 풀어내니 나 역시 그것을 오래 마음에 품지 않았었다. 하지만 반대로, 남편이 전혀 나를 상처 입힐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닌데 내가 상처 받았다는 것을 근거로 그의 말마저 나쁜 말로 몰아댔던 적도 있었다. 나의 반응으로 그의 말을 판단했던 것이다.


전에 이지선 씨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이 일과 비교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지선 씨는 음주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로 인해 온몸에 화상을 입고 얼굴마저 전과는 아주 다르게 변해버린 분이다. 하지만 이지선 씨는 그 음주운전자를 원망하지 않는다.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이 일에 대해서, 지금은 그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까지 고백한다. 이지선 씨의 예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지만, 사람이 마음밭이 온유하고 착하면 그에게 쏟아지는 고난조차 유익이 되는 것을 종종 본다. 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험한 말도, 온유한 사람이 받으면 그 말은 그를 상처입히지 않는다. 내게 할 만하니 한 말이라고 생각하거나, 그저 인신공격적 말이라면 무시하고 만다. 그러니 말은 상대를 상처입혔냐 아니냐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다.


내가 진실한 마음으로 한 말은, 비록 상대가 그것을 기분 나쁘게 듣고 나를 멀리하게 되는 결과를 낳더라도 내게는 나쁜 말이 아니다. 물론 이것은 꼰대를 변호하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말에 대해서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의 태도로 결정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보다는 종합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말을 하는 사람, 말을 듣는 사람,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 등을 고루 판단하여서 그 말이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판단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 말에 어떤 사람이 상처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죄책감을 갖거나 힘들어 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내가 어떤 말에 상처를 받았다면 그 말과 동시에 그렇게 나를 상처 입힌 내 마음은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무조건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경에서 보면, 인류를 사랑했던 예수 역시도 자신에게 채찍질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보고"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저들은 저들의 죄를 알지 못합니다."라고 기도한다. 저들의 행동이 옳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옳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고, 그들이 죄가 있으며 그 죄를 심지어 알지도 못하는 상태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용서를 하는 것이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 역시, 상대에 대해서 지나치게 미움을 품거나 화를 품지는 않지만 적어도 상대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정확히 인지를 하고 있다.


세상에 어떤 사람들은, 아주 잘못된 선택을 한 채 아주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곁에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가족, 친구, 지인, 그 누구의 얼굴로도 그들은 올 수 있다. 그들과 영영 거리를 두고 살 수는 없다. 그러니 분별해야 한다. 그리고 잘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깨어서 생각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그들의 술수에 잠식되지 않도록 나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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