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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Aug 13. 2023

여름휴가

다음 주면 남들보다 다소 늦게 여름휴가를 떠난다.

여름휴가가 이상하기도 한 것이 가기 몇 달 전부터 남편과 나의 스케줄을 맞추고, 일정을 계획하고 장소를 논의할 때가 가장 불타오르고 설레며 가슴이 벅차다. 그래서 여름휴가를 처음 생각할 때는 마음에 폭죽이 터지는 것 같다. 그리고 두 달, 한 달 점점 날짜가 다가올수록 희열은 줄어들기도 하고 묘한 긴장감에 사로 잡힌다. 가기 전 애들이 안 아파야 할 텐데, 가서도 안 아파야 할 텐데, 장거리 이동인데 힘들지는 않을까, 서로 지치고 피곤해서 싸우진 않아야 할 텐데, 짐은 어떻게 싸지. 벌써 휴가를 다녀온 마인드로 애들이 바로 다음날 등교하면 피곤하지는 않을까, 다녀와서 빨래더미는 어떻게 할 거야, 얼마나 피곤할까, 여독은 얼마나 갈지 휴가를 가지도 않았는데 걱정 한 보따리를 이고 지고 이미 휴가를 다녀온 것처럼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이번 휴가도 작년처럼 역사여행을 겸한 휴가라서 아이들 책도 읽혀야 하니 마음이 바쁘다. 양가 방문도 하니 계좌이체보다 오랜만에 손에 쥐어 드릴 용돈봉투도 미리 준비해 가야 한다. 비상약이 제대로 있는지 점검해서 없는 약은 미리 구비도 해야 한다. 가기 전 냉장고 속 음식물 정리도 하고, 집 안 온갖 쓰레기도 잘 치워둬야 한다. 빨래도 돌아왔을 때 빨래 폭탄에 대비해서 최대한 다 해서 정리를 해 둬야 할 것 같고, 청소기도 한 번은 더 돌리고 가야 집에 돌아왔을 때, 단정한 집을 보며 역시 집이 최고야를 외치며 감사함을 최대치로 느낄 수 있다. 이제 휴가를 생각하면 폭죽이 아니라 머릿속에 지진이 난 것처럼 진동하고 어지럽다.

 

휴가가 끝났을 때는 폭죽이 다 터지고 끝났을 때처럼 화려함의 잔상과 아쉬움을 마주해야 하는 것도 비슷하다고나 할까. 아니면 폭죽 뒤의 매캐하고 자욱한 안개가 걷어지며 헛헛함이 남게 되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여름휴가를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녀온 뒤를 생각하는 나는 과도한 긴장성과 걱정병을 가진 사람일까. 잠시 염려도 해 보지만, 이런 염려는 또 다른 염려를 낳으므로 생각의 고리를 이만 끊기로 한다.


제주에 살면서 여러 사정상 육지로 발걸음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동 시간과 비용,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야 하기에 일일생활권이라는 전국이지만 비행기를 타고 다녀오는 것은 여러모로 에너지 소모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번 나가는 기회에 이것저것 요리조리 다 하고 들어오고 싶은 욕심도 있다. 마치 벼르고 별러서 나간 해외여행과도 같다고 하면 너무 심한 비약일까.



다음 주면 휴가다. 짐을 싸고 싸고 싸서 빠트린 것 없이 야무지게 챙겨야 한다. 나는 계획적인 J니까 말이다. 어쩌면 이러한 성향도 스스로 만들어 내어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 높아지는 긴장감과 불안도를 견디는 것보다 계획해서 빠트리지 않게 잘 준비하는 것이 몸은 좀 피곤하더라도 나에게는 훨씬 수월한 일이다.


휴가가 진정으로 나무에서 쉼을 누리는 기간이 되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쉼을 누릴 수 있을까. 폭죽이 터지고 난 뒤의 아쉬움과 잔상과 헛헛함을 벗어버리려면 휴가를 가지 않는 게 오히려 답일까. 하는 알쏭달쏭한 질문을 던지며 짐 꾸러미 목록을 보며 짐을 싼다.

으쌰으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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