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여름을 기다린다.
그렇게 생각한다.
휴가가 있고 방학이 있기 때문인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
어쩌면 여름이 좋은 건 밤의 바람이 좋기 때문인 게 아닐까.
사실 여름밤의 바람은 다른 계절과 다르다.
올해처럼 장마가 길고 무더위가 긴 여름에 이게 무슨 소리냐고.
여름엔 어차피 장마는 예정되어 있고 더위는 당연지사다.
계절의 특징이니 왈가왈부할 것이 없다.
말하고 싶은 건 그 와중에도 느껴지는 여름의 청량감이 있다는 거다.
여름의 초입, 교복을 입은 나와 친구들은 에어컨도 없는 교실에서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좌울 거리며 졸기도 했지만 정말 그 시절 여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정중하게 참여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시험이나 입시가 우리에게 있었지만
쉬는 시간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잠깐 잠이 들 때면 창가로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곤 했다.
수돗가에서 손을 씻거나 입을 헹굴 때면 여름 햇살에 반비례하는 개운한 차가움도 느껴졌다.
가끔 더위에 지친 우리에게 수업 시간에 갑자기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고 하시며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행복했던 때였다.
나무는 말 그대로 찐한 초록색에 매미는 울어대고 밤이면 개구리들도 울어대지만 좀체 지지 않는 긴 밤이 참 매력적인 계절이다. 친구나 연인과 걷기에도 좋은 밤이며 야식으로 시원한 쟁반국수를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것 같은 밤이다.
이런 청량한 여름을 지나 지금은 선선한 여름밤이 되었다.
역시 절기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지라 입추가 지나니 아침. 저녁 바람이 다르다.
찐한 여름휴가를 보내고 벌써 가을이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밤엔 산책을 하면 많은 생각이 든다.
이 길을 걷다 집에 들어가면 다시 은근히 땀이 나겠지만
걷는 순간에 벌써 한 해의 마지막이 돼 가는 기분이다.
올 한 해 난 어떻게 보낸 건지
우리 가족들은 어떤 건지
일은 어땠는지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건지
하지 않아도 될 오만 가지 생각까지 떠오르는 밤.
새로운 여름을 맞이하기 위해 이젠 나머지 계절을 만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사브작 북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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