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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Aug 14. 2023

여름의 끝물에서

사람들은 여름을 기다린다.

그렇게 생각한다.

휴가가 있고 방학이 있기 때문인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

어쩌면 여름이 좋은 건 밤의 바람이 좋기 때문인 게 아닐까.

사실 여름밤의 바람은 다른 계절과 다르다.

올해처럼 장마가 길고 무더위가 긴 여름에 이게 무슨 소리냐고.

여름엔 어차피 장마는 예정되어 있고 더위는 당연지사다.

계절의 특징이니 왈가왈부할 것이 없다.

말하고 싶은 건 그 와중에도 느껴지는 여름의 청량감이 있다는 거다.


여름의 초입, 교복을 입은 나와 친구들은 에어컨도 없는 교실에서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좌울 거리며 졸기도 했지만 정말 그 시절 여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정중하게 참여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시험이나 입시가 우리에게 있었지만 

쉬는 시간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잠깐 잠이 들 때면 창가로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곤 했다.

수돗가에서 손을 씻거나 입을 헹굴 때면 여름 햇살에 반비례하는 개운한 차가움도 느껴졌다.

가끔 더위에 지친 우리에게 수업 시간에 갑자기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고 하시며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행복했던 때였다. 


나무는 말 그대로 찐한 초록색에 매미는 울어대고 밤이면 개구리들도 울어대지만 좀체 지지 않는 긴 밤이 참 매력적인 계절이다. 친구나 연인과 걷기에도 좋은 밤이며 야식으로 시원한 쟁반국수를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것 같은 밤이다.


이런 청량한 여름을 지나 지금은 선선한 여름밤이 되었다.

역시 절기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지라 입추가 지나니 아침. 저녁 바람이 다르다.

찐한 여름휴가를 보내고 벌써 가을이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밤엔 산책을 하면 많은 생각이 든다.

이 길을 걷다 집에 들어가면 다시 은근히 땀이 나겠지만

걷는 순간에 벌써 한 해의 마지막이 돼 가는 기분이다. 

올 한 해 난 어떻게 보낸 건지

우리 가족들은 어떤 건지

일은 어땠는지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건지

하지 않아도 될 오만 가지 생각까지 떠오르는 밤.


새로운 여름을 맞이하기 위해 이젠 나머지 계절을 만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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