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었다. 나의 이야기를 적어 보고 싶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내가 내뱉을 수 있는 이야기를 나만의 언어로 나타내보고 싶었다. 그런데 빈 화면에 반짝이는 커서를 보니 말문이 아니, 글문이 콱 막혀 옴을 느꼈다. 마음과는 달리 손이 안 움직이고 마음과는 달리 글문이 안 떨어진다. 내가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건가? 혼자서 자문해 본다. 답은 그렇지 않다인데 희한하게 손이 안 떨어져 반짝이는 커서를 노려보기만 했다.
용기를 내어 일상을 추적해 본다. 뭘 먹고, 뭘 입고, 무슨 택배를 받고, 어떤 책을 읽었으며, 가족 간에 어떤 실랑이와 정다움이 오고 갔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찰나의 순간으로 스쳐 지나갔던 일상을 복기해 보며 글감이 없나 머릿속의 촉각을 곤두세워 본다.
아이들에게 일기를 써라, 독서록을 써라, 주제 글쓰기를 해라며 다그쳤는데 정작 엄마인 나는 글을 쓰는 게 즐거운 일이고 쓰고 싶다고 하면서 얼마나 글을 썼는지, 그리고 쓰려고 시도했는지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작년만 해도 각종 글쓰기와 독후감 공모전에 성인 부문이 있었지만, 오직 아이들만 참여하게 했던 나였다. 아이가 수상을 하게 되어 시상식에 갔더니 성인 부문 수상자를 보며 괜스레 부러움과 묘한 질투를 느끼고 돌아왔던 기억도 떠 오른다.
그래서 이제는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른이 되고부터는 많은 영역에서 어른으로 취하고, 누릴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을 많이 행사해 왔다. 하지만 승산이 없어 보이고, 나의 삶과는 다른 결이거나 다른 방향일 때 그것이 일이거나 사람 사이의 관계 거나 했을 때 모두 피하는 방법으로 나만의 안전지대를 보호하고 존속시켜 왔다.
글쓰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로 써야 하는 것이 맞고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쓸 수 있는 것만을 주제로 삼아 쓰려고 했다. 물론 그렇게 해야 잘 쓸 수 있고, 오래 쓸 수 있어서 당위성이 있다. 하지만 다상량이라고 하면서 생각하지도 않고 써 보려 했다. 그래서 이제는 생각이란 것을 좀 하면서 써 보려 한다. 그러면 글쓰기가 나만의 세상에서 나를 구원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