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쫄이가 기르던 햄스터가 어제 아침 생을 다했다. 지난 여름 폭염에 한 마리가 목숨을 잃었었다. 남아있던 한 마리도 그렇게 떠나니 마음이 참 안됐다. 학교 갈 시간이 급한 쫄쫄이가 종이컵에 햄스터를 담아와서 엄마 코 앞에 들이밀며 항변을 했다.
“엄마 때문이라고!”
냄새 난다고 집안에 들이지를 못하게 하고 베란다에서 키웠었다. 어저께 밤이 너무 추워 잘못됐나 마음이 몹시 짠했다. 아이 주먹 보다 작은 몸을 웅크리고 컵에 담겨 있는 모습이 어찌나 안됐는지 차마 자세히 들여 다 보지를 못 하겠다. 그저 마음속으로 명복을 빌었다.
'아이구 미안하구나.
다음 생에는 좀 더 나은 목숨으로 태어나거라.
관세음보살~'
아빠를 닮아서 마음이 따뜻하고 여린 쫄쫄이는 너댓살 쫄쫄거리며 아빠 뒤를 따라다닐 때부터 강아지 한 마리 키우기를 소원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강아지는 도무지 거둘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손이 덜 가는 어린 생명들로 대신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쫄쫄이 손을 거쳐간 작은 생명들! 햄스터, 병아리, 장수풍뎅이, 장수풍뎅이 애벌레, 이구아나, 청거북… 길어야 한 철이나 두 철,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어린 놈들을 보면 마음이 영 편치 않다. 어린 생명을 다시는 집에 들이지 말아야지 했다가도 아이들 등쌀에 또 감당 못 할 생명을 맞아 들이곤 했다.
그 중에 가장 오래 산 녀석은 청거북이었다. 청거북은 사실 쫄쫄이가 맞아들인 것이 아니라, 쫄쫄이 백일 무렵 남편이 사 들고 와서, 거돌이, 거순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거돌이는 우리를 따라 이사를 두 번이나 했고, 쫄쫄이가 유치원 가고, 쫑쫑이가 태어나고, 귀여웠던 아기 쫄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말썽꾸러기 학동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실, 청거북은 그리 동적인 동물이 아니다 보니, 애들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었다. 어쩌다 아빠랑 같이 청거북 집 청소라도 하는 날에야 세숫대야에 거북이 부부를 꺼내 놓고, 목을 빼거나 움추러 드는 모습을 따라하며 깔깔대며 함께 장난을 치는 정도였다.
새끼였을 때는 두 마리가 비슷하더니, 커가면서 한 녀석이 쑥쑥 크면서 몸통이 차이가 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둘의 몸 크기가 거의 배 정도 차이가 났다. 그렇게 몸통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나면서, 우리는 비로소 거돌이 거순이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해 겨울, 각시 거순이가 사라져 버렸다. 하긴 우리는 신랑 각시 한 쌍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네들이 정말로 커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거순이를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뒤졌지만, 흔적도 없었다. 한동안 퇴근해서 집에 오면, “거순이는 ?” 하면서 가출한 청거북 소식부터 물었다. 거순이가 사라진 후, 집안 어딘가 청거북 한 마리가 배를 주리며 웅크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자꾸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렇게 우리 애를 태우던 거순이는 두어 주일 후에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났는데, 그 이후로 몸통 크기는 더욱 차이가 졌다. 그러다 얼마 후 거순이가 시름 시름 기운이 없더니 그만 저 세상으로 가 버렸다. 거돌이 혼자 남아 쓸쓸히 집을 지키게 된 것이다.
어쩌다 늦은 밤에 TV를 보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리면, 소파 옆 청거북 집에 거돌이가 죽은 듯 엎드려 있었다. 내 가슴에 답답증이 확 일었다. 태어나서 부터 저 좁은 세상에 갇혀 친구 하나 제대로 못 만나고, 넓은 물에서 헤엄한번 못 쳐보고. 그 세월을 견디는 청거북 마음이 자꾸 들여 다 보였다. 시간이 지나며, 거돌이를 큰 물에 풀어주는 것이 내 몫의 숙제가 되었고, 거돌이 집을 볼 때 마다 내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이들을 데리고 갑천가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가 천변 물속에서 청거북 한 마리를 발견했다. 갑자기 머리 속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꼬맹이들을 불러서, 우리 거돌이도 여기에 놓아 주자고 이야기를 했다.
“여기 넓은 물에서 신나게 헤엄치고, 친구도 만나게 해주자!”
가을이 깊어 가고 있었고, 물은 이미 차가워져 있었다. 아이들은 거돌이가 추우면 어떡하냐, 먹을 건 어떡하냐, 물이 맑지가 않다 등등 어린 마음이지만 생각이 많았다.
“거돌이는 혼자서 그렇게 오래 오래 살기 보다는
춥고 배가 좀 고프더라도,
넓은 물에서 헤엄도 맘껏 치고,
친구도 만나보고 그렇게 살고 싶을 거야…” 아이들을 달랬다.
그렇게 해서 거돌이는 혼자서 갑천으로 이사를 갔다. 물에 놓아주니 그 녀석은 놓아준 자리에 그냥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혹 동네 장난꾸러기한테 걸리기라도 안 될 것 같아서, 긴 막대기로 살살 밀어 넣었다. 그랬더니, 또 밀려 들어간 그 자리에 그대로 엎어져 있는게 아닌가. 가을 햇살이 물에 반사되어 눈은 시리고, 인내심은 바닥을 보이고 있는데, 녀석은 그저 엎어져 있는 게다. 우리 앞에서 쉬익 쉬익 헤엄쳐 어디론가 좀 쑥 가주면 좋을텐데, 녀석은 그저 엎드려 있었다.
쫄쫄이 쫑쫑이와 함께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그만 신경질이 나서, 나는 자전거를 죽어라고 타고 아이들은 딴 놀이에 정신을 팔렸다. 그러다 한참 만에 돌아 가 봤더니 거돌이가 마침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해 겨울, 갑천을 지날 때 마다 거돌이 안부가 궁금했었다.
아이들이 훌쩍 커 버리고, 엄마 아빠는 더 바빠진 요즘, 아주 가끔씩 갑천변에 나가게 된다. 천변에 나가면, 쫄쫄이 쫑쫑이는 어쩌다 불현듯 거돌이 안부를 궁금해 했다. “우리 청거북이 살아 있을까?” 아이들은 고단새 거돌이 이름은 잊어 버렸나 보다.
(2002년 겨울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