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을 잃은 듯한 날들을 건너는 방법
대학원 첫 학기 서울의 봄, 나는 힘들게 버티고 있었다. 가족과 떨어져 서울 생활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학교 공부를 따라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미국의 모 명문 대학원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들여왔다던가... 교수님들이 공부를 무지막지하게 시켰다. 특히, 필수과목이었던 전자공학 실험은 악명이 높았다.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빵판이라고 불리던 보드 위에 과제로 주어진 복잡한 전자기 회로를 구성하고, 원하는 실험 결과를 만들어내야 했는데, 난이도가 상당했다. 아주 미묘한 조건들에 따라 실험 결과가 달라지다 보니, 좀체 원하는 결과가 안 나와 애를 태웠다. 그러다보니, 일주일 내내 틈나는 대로 실험실에 매달려 있어야 했는데, 그 와중에 쏟아지는 과제물도 마감 시간 전에 제출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매주 이삼일 정도 날 밤을 새우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방에서 갓 올라와 어리벙벙 정신을 못 차리던 나는 도서관 아니면 실험실에 처박혀 과제물을 풀어 보려고 애를 썼다. 자력으로 풀 수 있는 것은 겨우 한두 문제 정도, 시간에 쫓겨 못 푼 문제는 선배들이 넌지시 넘겨준 것을 베껴 내기에 바빴다. 그런 와중에 전자공학 실험 과정은 감당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나와 한조가 된 C가 거의 두 사람 몫을 해 주어, 겨우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
그러니, 늦은 밤 방으로 돌아가면 몸은 녹초가 되었어도 머릿속이 복잡하여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름 똑똑하다 자부하던 나는 그곳에서 진짜 똑똑한 사람들을 한 무리 만나, 자꾸 작아지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답이 없을 것 같다는 막막함에 길을 잃은 심정이었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것일까?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확실해서 선택한 길이었다면, 헤매면서라도 가야 할 방향이 있으니 힘이 덜 들었을 것이다. 뭐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고 어쩌다 보니 무리에 섞여 그곳에 와있었던 나로서는 불안하고 괴로울 수밖에. 자려고 누우면 못 풀고 남겨둔 수식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그 시간에도 실험실에서 남아 고군분투할 동기 생각에 괴로워 뒤척이다가 선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 룸메의 언니 부부가 공부에 지친 동생을 위로하고자 찾아왔는데, 당시 군인이었던 그 형부가 양주 한 병을 가져 다 주었다. 밤에 시간을 놓쳐서 잠들기가 정 어려울 때, 도움이 될 것이라며, 물컵의 바닥 부분에 약간 깔리는 정도로만 따라 마시라고 했다.
시험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던가? 며칠째 토막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며 괴로워하니, 룸메가 양주병을 내밀었다. 어떨 결에 형부가 일러주었던 양의 두세 배는 되도록 반 컵 정도를 따루어 단숨에 들이켜고 자리에 누웠다. 갑자기 천장 벽지의 마름모무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소용돌이를 돌더니, 천장이 내려왔다 올라갔다 하며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 강렬한 느낌에 압도된 나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천장을 노려보다가 필름이 끊겼다. 눈을 떠보니 다음 날 아침이었다. 푹 잤고, 어디가 불편하거나 했던 기억은 없다. 그때까지 맥주 반잔 이상을 제대로 마셔본 적이 없던 나의 인생 첫 술은 그렇게 천장이 무너지는 강렬한 느낌으로 나에게 왔다.
서울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길을 잃은 듯한 막막함은 잊을만 하면 나를 찾아 왔다. 첫 술의 기억이 워낙 강렬하여, 그 양주 한 병에 대한 나머지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당시 룸메는 성당에 열심이었으니, 아마도 그 양주는 막막했던 시간들을 건너는 나의 징검다리가 되어 주지 않았을까 싶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여러 인연들을 만나는 긴 세월 동안 나는 어영부영 술과 친구가 되었다. 주량이 센 편은 아니지만, 쉽게 취하지는 않는다. 소주 몇 잔이 들어가면, 기분이 좀 가벼워져서 슬쩍 세상이 내 편이 되어주는 듯하다. 까칠함을 내려놓고, 나도 웬만하면 그저 세상의 편, 이 사람 저 사람 편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렇게 살짝 가벼워진 기분으로 사람들과 돈 안 되는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 일터에서는 못 보던 사람의 표정이 보이고, 알아둬 봤자 쓸데없을 것 같은 온갖 소소한 이야깃거리들로 수다를 떨며 유쾌해한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니, 소주가 있는 저녁 모임이 뜸해지다가 그만 거의 멈추고 말았다. 조신하게 퇴근하여 집콕을 이어가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가능한 한 자주 “어라 이런 좋은 안주가 저녁으로...” 하거나, “아.. 오늘 하루 지겨웠어”, 또 어느 날은 “오늘 하루 나 죽어라 열심히 했네. 아! 보람차” 하며 와인을 따른다. 그러나, 소주와 어울리는 잡다한 수다는 우리 집 저녁 식탁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아쉽게도, 오래 갈고닦아온 내 취향은 슬슬 맛을 잃어 가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 술은 어떤 의미일까? 삼십여 년 전, 길을 잃은 느낌으로 헤맬 때, 가야 할 먼 길의 어드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물어볼 이가 곁에 없었다. 그 시절 우연히 만난 술이 내 인생의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여러 시절 인연들을 묶어 주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때때로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은 날들이 있다. 그런 날에는 소주 한잔 앞에 두고 그저 먼 나라 이야기를 나눌 일이다. 짐이 무거우면, 잠깐 내려놓고 쉬었다 가고, 방향이 헷갈리면, 잠시 술 동무 어깨에 기대었다 가던 길 가는 것이다. 그렇게 세월을 건너는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