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살고 느끼는 인간‘ vs. ’순간을 저장하고 전달하는 인간‘
Home Conexus(The Networked Humans): 끊임없이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살아가는 세대(인류)
(MIT Technology Review 2006.June.1)
#장면 1: 우리, 이야기 많이 했는데요?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였을 것이다. 어느 주말에 동네 고깃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마침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방에는, 우리 자리 옆 테이블에 이미 다른 가족 한 팀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집 아들과 우리 아들이 서로 반가라 인사를 건넸는데, 알고 보니 두 아이가 학교 친구라는 것이다.
그런데, 고기를 굽고 식사를 하는 내내, 우리 아들이나 그 집 아들이나 더 이상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둘 다 고기는 먹는 둥 마는 둥, 전화기만 열심히 들여다보며, 그저 손가락만 재게 놀려 대었다. 나는 속으로 은근 걱정이 되었다. 우리 아들이 사회성에 좀 문제가 있는건가? 엄마가 일하느라 바빠서 아들을 제대로 못 돌봐줘서 그런가… 머리 속이 살짝 복잡했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대략 이런 대화였을 것이다.
“ㅇㅇ아, 아까 식당에서 만난 친구 있잖아.
너랑 별로 안 친한 친구야?”
“아니... 친한 친구야... 같은 반이야! 왜?”
“아니, 바로 옆에 앉아서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모른 체하길래...
친하면 아는 체도 좀 하고,
이야기도 좀 하고 하지 그랬어?”
“아니, 우리 이야기 많이 했는데?”
“엥.. 무슨 이야기를 했어?
엄마는 아무 말도 못 들었구만....”
“아.. 문자로 계속 이야기했어!”
허걱, 바로 옆 테이블에 서로 붙어 앉아 있으면서, 말이 아니라 문자 대화를 하고 있었던 거였구나.
가족이 함께 한 자리이다 보니 쑥스러워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인류는 진화 중인 것일까? 말이 아니라, 문자로 대화를 하는 쪽으로.
#장면 2: 영화의 한 장면 같았던...
10여 년 전쯤, 서울 출장길에 지하철을 타면, 지하철 속 빽빽이 타고 있는 사람들 열에 아홉은 고개를 스마트폰에 박고 있었다. 지금이야 일상이 되어서 놀랄 것도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동 통신 서비스가 대중화되고, 스마트폰 보급이 들불처럼 번지던 10여 년 전의 그 시절, 지하철 속 스마트폰에 코 박고 있는 군중의 모습은, 인터넷 기술을 다루는 내게는 매우 상징적으로 와 닿았다. 뭐랄까? 기술이 가져올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보인다고 할까?
더 빠르게, 더더 빠르게, 끊김 없이 세상을 연결하자는 인터넷 기술을 열심히 연구개발하면, 다가올 미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시공간적으로 제한 없이 인터넷에 접속되는 세상이 도래하면, 사람들은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과연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종종 생각해 보는 화두였다.
하나같이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무엇인가에 혹해 있는 것 같은 서울 지하철 속 사람들 모습은 한 장의 사진이 되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 모습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기술문명사회를 그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에게는 느껴진다. '이삭 줍는 사람들'처럼 '스마트폰 보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지하철 사람 풍경을 그려 보면, 아마도 우리 시대를 표상하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될 것이다.
10여 년 전에는 놀랍게 받아들여졌던 '다 함께 스마트폰에 코박은’ 한 무리의 사람들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건, 누구와 있든, 무엇을 하던 중이던 틈만 나면 자기만의 스마트폰 세상으로 떨어져 나간다. 잠시 외계인이 되었다 생각하고, 저 지하철 속에 들어가서,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진 군중들을 바라본다고 상상해 보라. 결코, 평범한 장면은 아닐 것이다.
#장면 3: 봄날, 황매산의 그녀들은
몇 해 전 어느 봄날에, 합천 황매산에 철쭉꽃을 보러 갔다. 산길을 한참을 걸어 올라 철쭉꽃 밭에 올랐으나, 아쉽게도 철이 조금 일렀는지 인터넷에서 본 장관을 만나지는 못했다. 그래도 산 등성이 전체가 붉은 꽃봉오리로 꽉 차 있고, 무리 지어 활짝 핀 꽃들도 여기저기 있어, 그 장관을 머리로 그려보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언제 또 오겠냐...”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남편과 내려오는데, 임도 옆 쉼터에 아주머니들이 잔뜩 모여 쉬고 있었다. 얼추 열댓 명은 될까? 나름 세련된 분위기의 사오십대 아주머니들은 어디 동창회 같은 데서 놀러 나온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녀들은 둥근 큰 원형으로 설치된 벤치에 쭉 모여 앉아서, 정말이지 한 분도 빠짐없이 각자 휴대폰에 고개를 박고 있는 게 아닌가!
놀라워서 한참을 바라 보았다. 친구들과 산에 놀러 왔다면,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산과 숲에 감탄하며 구경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햇빛 화창한 멋진 봄날 오후, 오랜 지인들을 만나 황매산에 오른 그녀들은, 각자의 스마트폰 속에서, 무엇을 보고,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철쭉꽃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일까? 또는 지금 곁에 있지 않은 가족이나 먼 곳의 누군가에게 황매산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는 것일까?
잘 살려면, ’지금 여기‘에 집중해서 살라고 한다. 그런데, 인터넷이나 스마트폰과 같은 기술이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이나 공간적 제약을 없애 버렸다. 이 기술에 힘입어, 우리는 ‘지금 여기’를 단숨에 벗어나,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제쳐 두고, 멀리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과 자꾸 접속하려고 한다. 바로 눈앞에 있는 멋진 풍광을 찬찬히 바라보고 그 떨림과 여운을 마음에 새기기보다,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전해 주고자, ’지금 여기‘의 순간을 그저 폰 안에 갈무리하고자 바쁘다.
각자의 삶의 순간을 온전히 살고 느끼기보다, 기록하고 전달하느라 바쁘고, ’다른 누군가가 기록하고 전달해 준 시간과 공간‘을 구경하느라 바쁘다. 눈부신 ICT 기술 발달로 인해 우리는 ’순간을 살고 느끼는 인간‘이 아니라, ’순간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인간‘이 되고 있는 것일까?
해마다 발표되는 인터넷 관련 통계 정보 중에 ‘Internet Minute' 라는 Infographic 자료가 있다. 딱 1분, 즉 60초 동안에 인터넷 상에 얼마나 많은 정보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얼마나 많은 교류가 일어나는 지를 보여 주는 자료이다. ‘21년의 'Internet Minute' 자료에 따르면, 유튜브 플랫폼에서 만들어지는 컨텐츠만 살펴 보아도, 1분 동안에 69만 4천 시간에 해당되는 새로운 영상이 올라온다고 한다. 여러분이 딱 1분 동안 생성되는 유튜브 영상을 보겠다고 마음 먹으면, 약 80년, 즉 평생을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인터넷에 상시 접속된 인류로 자리매김 중인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인터넷 세상의 입출력 시스템이 되고 있는 중 아닌가 싶어진다. Homo Conexus 세대인 우리는 ‘지금 여기’에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에 매달려 기록하고 저장하고 전달하거나, 타인의 기록을 구경하고 있는 것 아닐까?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Homo Conexus라 불리는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