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첫날에 난데없는 신문물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한다며 아이들이 청소로봇을 선물해 준 것이다.
우리 집의 청소나 청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사실, 우리 집 남편은 조금 유난하게 깔끔을 떠는 편이다. 그에 비해 나는 생활인으로서 딱 적당한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집안 물건은 단정히 정돈되어 있는 것을 지향하나, 청소기는 그저 일주일에 두어 번만 돌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이들이 다 커서 집을 떠났고, 우리 부부는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나 돌아오니 사실 뭐 청소에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없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한 남편은 발바닥에 무언가가 밟히는 것 같다는 둥 하면서 하루 건너 한 번씩은 청소기를 돌리는 편이었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집안 청소는 자연스레 내 손을 떠났고, 나는 그저 주방만 챙기며 살아왔다.
그렇게 부부 둘이서만 속 편히 살고 있는 와중에,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딸아이가 잠시 집으로 왔다가 코로나 사태로 발이 묶여 버린 것이 거의 일 년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게 식구가 둘에서 셋으로 늘어나는가 했더니, 올 초에는 콩이 까지 불러들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아빠를 빼다 박은 딸도 한 청결 하다 보니, 어느새 이 집 부녀의 퇴근 인사가 ‘청소기 돌렸어’가 되더니, 아침저녁으로 청소기를 돌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콩이가 들어온 이후에는, 나는 듣도 보도 못한 청소용품들이 배달되고, 부녀는 청소 후 모아진 먼지 양을 서로 확인하는 청소 배틀도 곧잘 하는 지경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청소기 돌아가는 시끄러운 기계음이 영 성가시기만 해서, 혼잣말로 소심하게 툴툴거려 보는 요즘이었다.
아무튼, 콩이가 들어온 후 부녀의 청소 집착증이 조금씩 심해지는 듯하여 그들의 정신건강을 염려해야 하나 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 집에도 드디어 청소 로봇이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콩이가 제방으로 알고 있는 두 번째 방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해 주고, 일단 밥을 먹였다(충전을 했다). “배불리 먹었어요 “ 소리치길래, 집안에 풀어주었더니, 온 집을 저 혼자 돌아다니며, 제 영역을 표시하고, 이런저런 청소 경로를 만드는 것이다. 스마트폰 앱으로 무엇을 하나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지도를 만들고, 구역을 구분하고, 길을 만드는 등 인공지능이 정밀하게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정말 청소를 반짝반짝하게 잘하는 것이, 한 청소한다는 남편보다 더 낫다. 날렵하고 둥근 몸을 움직여 소파 밑으로도 들어가고, 카펫 위에도 응차 응차 올라가 먼지를 빨아들인다. 일 하다가 배가 고프면, ”저 밥 먹으러 가요” 하며 제 밥상 앞으로 돌아가 얌전히 배를 채운다. 배 채우고 나면, 하던 일을 마저 하고, 장애물을 만나면 사진을 찍어 주인께 보고를 하네! 이러니 저러니 잔소리도 없어 세상 속 편하다. 소위 ICT 분야의 첨단 기술을 연구한다고 하지만, 신문물 가전제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인 내 눈에 그저 신통방통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는 아침저녁으로 ‘청소삼촌’이 돌아다니는 중이다. 원래 아빠가 하던 청소였으니, 이모가 아니라 삼촌이 더 어울린다는 논의 끝에 ‘삼촌’이 된 우리 집 청소 로봇이.
휴일이었던 며칠 전 어린이날, 거실에서 빈둥빈둥하고 있는데, 마침 청소삼촌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은근슬쩍 살펴보았다.
딸아이는 청소 로봇이 돌아다니기 쉽게 바닥의 이런저런 물건들과 의자들을 휘리릭 치워 주더니, 소파에 주저앉아 청소삼촌 앱을 들여다보고 앉았다. 식구들이 로봇의 주행 경로를 방해하지는 않는지 감시를 하며, 삼촌이 곧 그쪽으로 갈거니 방해 안되게 잠깐 비켜야 한다고 알려 주거나 하는 것이다. 남편은 하릴없이 어슬렁어슬렁 이방 저 방 돌아다니며, 청소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그저 만끽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식구들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다가, 아침 설거지를 하러 주방으로 갔다. 그러나, 뒤따라온 삼촌을 어쩐지 방해해서는 안 될 것 같아, 얌전히 소파로 물러나 앉아 무료해하다가 종국에는 TV 삼매경에 빠졌다.
우리 콩이는 제 맘대로 돌아다니는 ‘청소삼촌’이 신경에 거슬리는지 삼촌 주변에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언니한테 욕을 한바탕 먹었다.
“야아~ 꽁아,
네가 그렇게 삼촌 주변에서 자꾸 왔다리 갔다리 하면
저봐, 삼촌이 저렇게 느려지잖아..
저리 비키란 말이야 ! 바보야”
욕을 먹으면서도 콩이는 방문 앞에 오도카니 앉아서 제방을 휘젓고 다니는 삼촌을 지켜보고 앉았다. 영역 동물인 콩이 입장에서 제 방을 헤집고 다니는 삼촌이 불편하고 불안했을 수도!
세상 참 편해졌다. 점점 더 많은 일 들을 기계가 하게 될 것이고, 어떤 일들은 사람보다 오히려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하던 소소한 많은 일들(청소를 하고, 운전을 하고, 물건을 나르고, 요리를 만들고, 가족을 돌보는 것 같은)을 로봇에게 넘겨준 후, 인간의 삶은 무엇으로 채워지게 될 것인가?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루틴한 행위들로부터 벗어난 후, 우리에게 주어질 넘쳐나는 시간을 우리는 어떤 의미 있는 삶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일까?
사실 나는 청소를 삼촌이 하든 남편이 하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삼촌 덕에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시간을 벌게 된 남편은 어떨까? 앞으로 그의 삶을 좀 살펴볼 생각이다. 청소기 대신에 그의 손에 무엇을 쥐는지, 삼촌 이전과 삼촌 이후, 남편의 행복지수는 더 올라가는지!
‘그나저나, 꽁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청소삼촌에 대해’
<엄마,
저는요.
청소삼촌이 제 방을 막 헤집고 다니면
불안해 죽겠어요.
어저께는... 제가요.
화장실이 급해서
제 큰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있었는데요.
아 글쎄.. 삼촌이 청소에 방해된다고
사진을 팍 찍어서 언니한테 보냈잖아요.
엄마랑 언니랑 그 사진 보며
깔깔대고 웃었지요. 흐응..
나도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엄마.
그리고요. 엄마.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요.
음...
엄마는 미니멀 라이프 지향한다고
툭하면 이야기하잖아요.
근데 엄마 집에 뭐가 이렇게 많아요?
청소삼촌이
요리조리 피하며 청소하느라
막 힘들 것 같아요.
그래도요. 엄마..
나도 언젠가 청소삼촌 타고
이방 저 방 돌아다녀 볼 거예요.
언니가 유튜브에서 보여준 것처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