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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Jan 11. 2022

소비하는 생산적인 삶

여보 10만 원만

25일 카드 결제일이 다가오면 여럿 은행의 계좌를 열어 잔액을 확인한다. 경제활동을 중단한 지 12년 만에 생긴 습관이다.


집에서 아기랑 놀고먹고 자는 게 전부인데 소비는 왜 자꾸 늘어날까.


아기를 낳기 전에는 월급으로 카드값을 내고 꾸역꾸역 투자를 했는데 육아휴직 후엔 엄두도 못 내는 일이 됐다. 매달 월급을 받는 생산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잉여의 삶을 꿈꾸는 나에게 엄마의 삶은 지극히 모순적이다. 사회에서 피 터지게 생산활동을 하지 않지만 집에서 태평하게 소비생활을 즐길 수도 없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육아휴직금  육아의 가치를 매기는 물질적 보상이 부족하다.


정신적 보상도 마찬가지다. 아기의 잠투정에 밤 잠을 설쳐 좀비가 돼도, 산더미 같은 빨래를 널어 손목이 시큰해도 '내가 이번 달 육아 실적이 좋구나', '아기가 이번 달 많이 행복했어'라는 성취감을 얻기 어렵다.


왜 엄마는 이상하리 만큼 생산활동이 적다는 생각이 들까. 아기와 보내는 별일 없는 하루, 사건 사고 없는 오늘이 가장 큰 성과인데 그걸 치하해 달라는 엄마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집 앞에 쌓인 택배 박스를 보고 '또 소비했네'란 자조적인 푸념이 나올 뿐 '이번 달 고생한 수고의 대가야'란 뿌듯함을 갖기 어렵다.


더 이상 소비가 즐겁지 않은 나에게 남편의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됐다. '사람을 키우는 것만큼 생산적인 활동은 없어. 당당하게 소비해'


늦은 밤 아기가 잠들고 휴대폰을 만지작 거린다. 새벽 배송으로 아기 이유식에 들어갈 고기와 채소를 주문하고 인스타그램 광고로 아기 장난감을 결제했다.


여보, 그럼 나 생활비 10만 원만 더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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