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거 맞니
하루 코로나 확진자 20만명 시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거나, 확진됐다가 회복된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무실 옆자리에서 일하는 동료가, 옆집에 사는 이웃이 확진됐다고 해도 이상할리 없는 세상이다.
가족이 아니면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지 않고, 그 가족 역시 격리하지 않는다. 저 멀리 걸어오는 사람이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다행히 우리 가족은 확진자가 한 명도 없는 생존자 가족이 됐다. 남편과 나, 쥬쥬를 포함해 직계가족은 전부 코로나로부터 무사하다.
진짜 무사한 건지, 무증상이라 모르고 지나간 건지 알 수 없으나 아직까진 확진된 사람이 없이 무탈히 살고 있다.
남편은 일주일째 재택근무 중이다. 뒷자리에 앉은 직원이 코로나에 확진됐고 회사 방침에 따라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자가 격리하고 있다.
안 그래도 바쁜 감사 시즌에 재택근무하는 남편은 방에서 꼼작 없이 앉아 일한다. 말 그대로 집에서 하는 근무일뿐 달라진 것은 없다.
달라진 건 건조하고 메마른 육아에 지친 나와 쥬쥬다. 견물생심이 이보다 더 할 수 있을까. 쥬쥬는 아빠가 있는 걸 알고 빠른 속도로 보행기를 끌고 가서 방 문을 두드린다.
문이 열린 틈으로 보행기를 들이밀고 응! 아빠! 를 부른다. 남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노트북을 닫고 포스트잇을 떼는 일도 생겼다.
나 역시 남편을 자주 찾는다. 쥬쥬가 잠투정을 할 때, 집안일을 하는데 쥬쥬가 심심하다고 보챌 때, 재택근무로 탄생한 '여보 찬스'를 남발한다.
여보, 쥬쥬 봐줘. 똥 묻은 바지 손빨래해야 해!
지금 쥬쥬 안아줘. 내가 안으니까 싫다고 운단 말이야.
이렇게 보면 고된 업무에 육아가 더 해진 남편의 어깨가 너무 무겁다. 그렇다고 나 또한 홀가분한 것은 아니다.
바쁜 육아에 우리 부부의 식사를 챙겨야 일이 추가됐다. 쥬쥬와 둘이 있을 때 주로 시켜먹거나 간단히 먹었던 식사를 한두번이라도 차려야 하는 일이 생겼다.
집안에 머무는 식구가 늘었으니 빨래도 청소도 자주해야 한다. 그리고 더해진 찰나의 무게에 불쑥 화가 난다.
여보, 점심 언제 먹을 거야? 찌개 다 끓였는데.
응, 밥 다 준비되면 나갈 수 있어.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준비되면 나온다니. 그전에 나와서 수저를 놓을 수 없어? 요즘 식당에 가도 스스로 주문하고 그릇을 가져가잖아. 여기가 레스토랑이야 뭐야!
성난 아내의 융단폭격을 맞은 남편은 벙쪄서 말을 잃는다. '이 집 남편 참 불쌍하네'라고 할 수 있지만 역할이 바뀐 상황도 종종 벌어진다.
회사일과 집안일이 분리가 되지 않은 남편은 업무에서 쌓인 스트레스와 분노를 그대로 안고 거실에 나온다. 그리고 나에게 풀어낸다. 아기를 안은 채로 말이다.
아, 정말 일을 왜 저따구로 하는 거야. xxx xx 짜증 나.
여보, 애기를 안고 왜 나쁜 말을 해! 쥬쥬 이리 줘!
분명히 우리 가족은 코로나로부터 생존했는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고 있다.
길어진 코로나 사태에 가족 간 가정불화가 커지고 이혼 상담도 늘었다는데 우리 집도 안전하지 않은가 보다.
오늘 저녁은 남편의 피로와 나의 고단함을 달래며 치킨을 시켜 먹어야겠다. 덧, 쥬쥬는 떡뻥을 두 개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