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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예지 Aug 21. 2019

본격적인 음악공부

1.

서울재즈아카데미는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콘서바토리 방식의 학기제 커리큘럼으로 운영되는 음악학원이었다. 여기에 와서 나는 대학교에 실용음악 전공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대학에는 클래식 음대만 있는 줄 알았던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하고 싶은 노래를 불러서 졸업장을 받는단 말이지! 그리고 노래를 불러서 유학을 갈 수 있단 말이지!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구나.


그 외에도 재즈아카데미의 일상은 매일매일이 놀라웠다. 보컬 이외의 악기들이 연습이라는 것을 하는 모습도 처음 봤고, 그렇게 원했던 악기들과의 합주며,  너무나 다양한 색깔의 목소리를 가진 보컬들, 무엇보다 같은 취미 혹은 특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나누는 고민들. 이전엔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래, 난 좀 더 큰 세상으로 나온 것이었다! 정말 열심히 노래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했던 것 같다. 노래가 하고 싶어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또 다시 찾아왔다. 내 노래의 문제가 뭔지, 또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선생님과 동기들의 이야기를 날마다 듣고 싶었다. 


그러나 음악 이론 수업들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특히 화성학 수업은 아무리 노력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언어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굳이 알아들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노래를 더 잘하게 되는 일과는 하등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것이 얼마나 큰 오산이었는지는 이십대를 넘어가야 깨닫게 된다. 


과거 가수의 실력은 주로 '가창력'의 승부였다. 고음 발성이나 풍부한 성량 등에 대해 가창력이 '좋다'는 평가를 내렸고, 열광했다. 그때만 해도 해외 유명 가수의 곡을 한국 가수가 다시 부를 때, 그 가수와 최대한 비슷하게 부르면 잘한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대중들은 더이상 '모창'을 원하지 않는다.


가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가창력'의 승부에서 '색깔'의 승부로, 다시 '음악'의 승부로 그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색깔이란 목소리의 색깔을 말하는데, 허스키한 중저음대의 일명 소몰이 창법이라 불리는 가수들이 우수수 쏟아지던 시절도 있었고, 홍대여신이라고 불리던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창법을 너도나도 구사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목소리의 유행을 몇번 거치다보니 이제 목소리의 색깔이라는 것만으로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드디어 '음악'의 승부로 돌입한다. 이는 싱어송라이터의 시대가 열렸음을 말한다.  


가수가 자신의 목소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이것이 곧 그 가수의 '색깔'이 되는 것이었다. 


급기야 2010년대가 넘어가며 오디션 프로그램이며, 음악예능 프로그램들이 유행하자 대중들의 청취수준은 점점 더 높아져, 이제는 기존 가수의 곡을 다시 부를 때, 원곡 가수와 똑같은 분위기로 노래를 부르면 그것은 가수 자신만의 '색깔'이 없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대중들은 좀 더 색다른 것, 다시 말해 위반하고 전복하는 것의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제 가창력만 갈고 닦은 가수는 얼마나 작아지는가. '노래'로만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회사를 만나 자신을 위한 작편곡팀이 대기하고 있다면 가창력만 갖고도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으니 이제 가수들은 가창력 이외의 것들에 눈을 돌려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음악이론이나 악기연주는 한번쯤 꼭 넘어야 할 산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야 '음악' 이라는 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지?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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