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이 필요 없는 자리
그렇게 남의 작업물을 적당히 비슷하게 만드는 나의 첫 업무가 끝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회의실로 불려 들어갔다.
회의실에는 팀장님 네 분과 대표님이 계셨다.
내가 만든 아이콘을 화면에 띄워두고 회의가 시작됐고, 나는 옆에 앉아 그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이건 왜 이렇게 디자인했어요?”
“이 색은 왜 쓴 거예요?”
질문은 날카로웠고 어투도 꽤 공격적이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내가 생각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분들은 내 대답에 관심이 없었다.
답을 듣고 싶다기보다는 지적을 하기 위한 질문처럼 느껴졌다.
그런 식의 회의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앞으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하는지가 정해졌다.
레퍼런스를 찾고, 그걸 정리해서 파트장님께 보내고, 승인이 나면 그대로 만들 것.
그렇게 나의 첫 회사 생활의 업무 방식이 정해졌다.
이쪽으로 취업한 친구도 없었고, 디자인을 하는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 원래 이런 식으로 일하는 게 맞는 건지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마감 기한은 늘 촉박했다.
입사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계속해서 시간에 쫓기듯 일을 했고, 이 방식이 맞는지 틀린 건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인수인계나 회사에 적응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바로 업무에 던져졌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 오거나 가끔 같이 나가서 먹었지만,
나는 점심시간에도 일을 하지 않으면 마감 기한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늘 30분 안에 대충 먹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출근한 지 2~3주쯤 지나자 내 복장도 달라졌다.
취업 전 알바를 할 때보다도 더 편한, 추리닝 차림이었다.
처음엔 부모님이 놀라 한마디 하셨지만,
“다들 이렇게 입고 다녀”라고 하자 한숨만 쉬시고 더 이상 복장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10월 첫째 주에 입사한 나는 조금씩 회사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출근하면 이어폰을 끼고 미친 듯이 작업만 했다.
작업물이 나오면 회의실로 불려 들어가 팀장님들의 피드백을 받았다.
말이 피드백이지, 그때의 내 기분은 어떻게든 흠을 잡으려는 사람들 앞에서
내 작업물이 하나하나 까발려지는 느낌에 가까웠다.
처음엔 회의에 들어갈 때마다
왜 이런 콘셉트를 잡았는지,
왜 이렇게 디자인했는지
설명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분들은 내 의견이 궁금한 게 아니었다.
결국 그분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걸 알게 됐고, 그 뒤부터는
회의실에 들어가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음… 네…”
“알겠습니다…”
그 정도만 말하면 그분들은 내 의견을 다 들었다는 듯 본인들 이야기만 했다.
회의가 끝나면 내 눈에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이 그대로 수정만 하면 됐다.
참고로, 그 회의실에 있던 분들 중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 이렇게 일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내 또래 직원들 모두 나와 비슷한 표정을 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시키는 일만 했다.
그리고 회사를 한두 달쯤 다니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팀장님들 말고는 오래 다닌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 대부분이 6개월도 안 된 사람들이라는 것,
게다가 작은 회사인데도 매일같이 면접자가 몇 명씩 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