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회의실
그래도 첫 회사였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서는 최소 1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나는 내 감정이나 상태가 어떻든 한번 시작한 건 꾸준히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1년을 목표로 회사를 다니기로 했다.
출근 시간보다 일찍 나가고, 점심시간에 일하고,
밤늦게까지 야근을 한 건 아니었지만 퇴근 시간은 늘 조금씩 넘겼다.
그리고 결과물이 나오면 또 회의실로 불려 갔다.
몇 달이 지나자 그마저도 익숙해졌다.
그렇게 수습 기간 3개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일은 점점 많아졌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늘 마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단 한 번도 마감일을 넘긴 적은 없었다.
어떻게든 기한은 지켰다.
그리고 사건이 터졌다.
월요일부터 원래도 일이 많던 나에게 말도 안 되는 양의 업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정 사항도 평소보다 많았고, 당장 필요하지 않은 작업들까지 나와 상의 한마디 없이 모두 ‘이번 주’로 기한이 정해졌다.
그래도 월요일, 화요일에는
“이번 주 금요일까지 해주면 좋겠어요”라는 말이었다.
못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뉘앙스처럼 들렸고, 나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래도 금요일을 목표로 정말, 정말 열심히 일했다.
업무가 계속 쌓여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고, 속이 답답해 몰래 울기도 하면서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수요일이 되자 말이 바뀌었다.
“무조건 금요일까지 해주세요.”
목표는 같았지만 그 말은 내 숨을 확실하게 조여 왔다.
그 와중에도 추가 업무는 계속 들어왔다.
목요일, 금요일.
그렇게 지옥 같은 한 주가 흘러갔다.
일찍 출근하고, 점심을 입에 욱여넣듯 먹으며 일했으며 야근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자기 전까지 작업했고, 작업물을 회사로 들고 갔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 여섯 시 반.
겨우 일을 끝내고 퇴근하려고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팀장님이 회의실로 부르셨다.
오랜만에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 마음이 급했지만,
‘뭐지?’ 하는 생각으로 회의실을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팀장님은 말을 바로 꺼내지 않고 한참을 뜸을 들이셨다.
그 순간 괜히 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오늘까지만 일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내셨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손이 느리다는 것이었다.
심장이 발끝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을 그때 처음 느꼈다.
이상하게도 너무 황당한 말을 들으니 화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해졌다.
잠시 가만히 있다가 물어봤다.
“저, 잘리는 건가요?”
수습 기간이었지만 계약서상 기간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팀장님은 당황하며 “그런 건 아니다”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말은 돌고 돌아 결국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오늘까지 일하라니.
퇴근 시간도 넘겨가며 일한 사람에게 지금 짐을 싸서 나가라는 말이라니.
수많은 생각이 스쳤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부모님께 뭐라고 말하지’였다.
큰 회사도 아니었고, 누구나 아는 회사도 아니었는데 여기서조차 이런 취급을 받는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다.
당장 짐을 들고 집에 들어가면 놀라실 텐데,
내일은 주말이라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고, 팀장님이 하는 말은 그저 소음처럼 들렸다.
일단 당장 약속이 있어 짐은 주말에 다시 와서 챙겨가겠다고 하자,
언제, 몇 시에 올지 정하라고 했다.
원래는 비밀번호로 출입하는 구조라 아무도 없을 때 짐만 챙겨가도 됐는데, 내가 뭔가를 가져갈까 불안했던 걸까.
어이가 없어서 그냥 오늘 다 챙겨 가겠다고 하고 짐을 쌌다.
짐을 들고 회사를 나오는데
그래도 3개월을 함께 보낸 사람들 중 아무도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내가 입사한 지 한 달 반쯤 됐을 때 화가 난 채 휙 퇴사했던 언니.
그때 나도 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 언니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까.
친구에게는 미안하다며 약속을 취소하고, 카페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이 짐을 들고 집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