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야?”

아무것도 묻지 않은 위로

by 남연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짐을 챙겨 일어났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황당한 일을 겪어 머리는 멍했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엄마 목소리를 듣는 순간 참고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는 바로 이상함을 느낀 듯
어디냐고,
무슨 일 있냐고
다급하게 물어봤다.


나는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나 회사 잘렸어, 엄마. 오늘까지만 나오래.”


카페에 앉아 부모님께 어떻게 말할지, 어떻게 말해야 덜 놀라실지를 수없이 정리했는데 막상 엄마 목소리를 듣자, 말은 전혀 정리되지 않은 채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실제로는 몇 초밖에 되지 않았을 텐데, 나는 그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회사에서 잘렸다는 다 큰 딸의 말에 엄마가 처음으로 한 말은 이유가 아니라
“어디야?”였다.


이유를 물으실 거라 생각했는데 어디냐는 말이 돌아오자 나는 더 크게 울어버렸다.

엄마는 빨리 집에 오라며 지하철역으로 나가 있겠다고 했다.


집에 도착한 뒤에도 엄마는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분명 궁금하셨을 텐데도 이유는 묻지 않고 그저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셨다.

그 앞에서 나는 정말 엉엉 울었다.


조금 뒤 집에 온 아빠도 이유를 묻지 않으셨다.

대신 내가 들으라는 듯 회사 욕을 해주셨다.


1년 넘게 다닌 직원이 한 명도 없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작은 회사에서 매일같이 면접을 보는 이유가 뻔하지 않느냐며,

아무것도 모르는 절박한 취준생들을 뽑아 수습 기간 동안 싸게 일 시키고 쉽게 내보내는 회사라며
몇 시간이나 나 대신 화를 내주셨다.


사실 집에 오기 전, 카페에 혼자 앉아 있을 때 나는 나를 탓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 손이 느린 건가,
일머리가 없는 걸까,
나는 더 열심히 할 자신도 없는데, 이렇게 작은 회사에서도 버티지 못하면 내가 갈 수 있는 회사는 과연 있긴 한 걸까.

다시 취업할 수는 있을까.


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 상태로 집에 왔는데,
부모님은 이유도 묻지 않은 채 속상할 딸 대신 더 크게 화를 내주셨다.

그리고 내가 잘못한 것도, 부족해서 벌어진 일도 아니라고 말해주셨다.

거기가 이상한 거지, 네가 기죽을 일은 아니라고.


사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회사가 이상하다는 건 납득이 됐지만,

그래도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떨쳐내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나의 취업 준비는 처음 취업을 준비할 때보다 훨씬 더 막막한 상태로 다시 시작됐다.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지원할 만한 회사를 찾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작가의 이전글수습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