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할 수 있을까?
20대 후반이 된 지금도 세상은 여전히 어려운 것 투성이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연애가 아닐까 싶다.
여초과에 진학한 나는 동아리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대학 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지도 않았다.
수업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가고,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학교 밖에서도 특별히 활동적인 삶을 살지 않았기에 집, 학교, 알바를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친구들을 만나는 건 좋아했지만 친구도 끼리끼리라고, 내 친구들 역시 조용한 곳에서 우리끼리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만한 상황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친구들은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과 연애를 시작했고,
나는 늘 “나도 남자친구 사귀고 싶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
가끔 친구들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나가기도 했지만
인위적인 분위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번번이 스트레스만 쌓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지만,
그때의 진심을 꺼내보자면 나는 내가 갈 수 있었던 대학보다 낮은 대학에 진학했다고 생각했고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 학교 친구들보다 내가 더 낫다는 오만하고 유치한 생각을 하며 오히려 대학 생활을 더 멀리했던 것 같다.
그러한 이유들로 내 20대 초반은 동네 친구들보다 뒤처진 것 같은 자격지심 속에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어쩌면 누가 봐도 괜찮은 남자친구를 만나 “나 이런 사람 만날만큼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진 나에게 좋은 사람이 생길 리 없었다.
자격지심만 가득했을 뿐 정작 나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고, 그럴수록 친구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만 커졌다.
앞서 나가는 친구들에게 뒤처진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더 외로웠다.
그러던 22살 겨울,
엄마와 언니와 함께 떠난 스위스 여행에서 한 오빠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세 살 차이 나는 언니를 이미 어른처럼 느끼며 엄마와 함께 언니만 따라다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막 25살이 된 언니가 처음 가보는 스위스에서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엄마와 나를 데리고 다니느라 얼마나 부담이 컸을까 싶다.
어쨌든 우리는 융프라우로 향하고 있었고, 언니는 무언가 잘 풀리지 않았는지 당황한 채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그때 또래로 보이는 남매와 한 오빠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전날 숙소에서 우연히 만났던 사이인데 일정이 겹쳐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다며 괜찮다면 같이 다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렇게 우리 가족 셋과 남매, 그리고 그 오빠까지 여섯 명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디를 가든 늘 나를 챙기던 엄마와 언니가 그날만큼은 나를 찾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 오빠와 둘이 다니게 되었다.
눈부시게 예쁜 스위스에서 둘이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고, 장난을 치고, 썰매를 타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저절로 웃음이 날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오빠의 대학과 내가 다니던 대학은 지하철 한 정거장 차이였고, 집 역시 지하철로 20분도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법한 우연이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엄청난 운명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