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안고.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첫 출근 날,
나는 전 회사를 다니면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지각을 했다.
출근 시간은 오전 10시였는데, 지하철을 눈앞에서 두 번이나 놓쳐버렸다.
결국 10시 정각에 회사가 있는 빌딩 엘리베이터에 겨우 올라탔고,
큰 건물이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6대나 있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올라가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결국 10시 2분쯤, 회사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금 올라가는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말만 반복했고, 문이 열리자마자 거의 뛰듯이 회사로 들어갔다.
나와 같은 날 입사한 분들은 이미 20~30분 전에 도착해 자리를 정리하고 계셨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지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고,
이 회사에 입사한 이후 지금까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각을 한 날은 그날 단 하루뿐이었다.
그게 하필이면 회사 첫 출근 날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답 없어 보였을까 싶었다.
그래도 다행히 큰 문제없이 첫날 교육을 모두 듣고 퇴근할 수 있었다.
이 회사의 수습 기간은 2개월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 2개월은 단순한 수습 기간이 아니라 어쩌면 다시 잘릴 수도 있다는 불안의 시간이었다.
전 회사 역시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입사했지만 전환 직전에 해고를 당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언제 상황이 뒤집힐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았다.
취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그래도 이번 회사는 이전 회사와는 많이 달랐다.
메인 업무가 디자인이 아니라 기획 중심 업무였기 때문에 매 순간 결과물로 평가받는 부담이
훨씬 덜했다.
업무 지시도 훨씬 구체적이고 명확했다.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그래서 일을 하는 과정 자체가 훨씬 수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 회사와 가장 달랐던 점은 노력한 만큼 피드백이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전 회사에서는 단 한 번도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는 작은 결과물에도
“잘했다”,
“좋은 방향이다”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처음에는 그 말을 쉽게 믿지 못했다.
전 회사 사람들도 겉으로는 늘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면 마음 한쪽에서는
‘저게 진심일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곤 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하나뿐이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것.
업무를 받으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절대 그냥 넘기지 않았다.
막히는 부분은 메모해 두었다가 하나씩 정리해서 질문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답변 내용도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그런 태도를 좋게 봐주신 덕분에 나는 입사 한 달 만에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팀장님께서 임원급 회의에서
“어차피 같이 오래 일할 사람인데 굳이 수습 기간을 길게 둘 필요가 없다” 고 말씀해 주셨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첫 회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 내가 부족한 부분만 바라보며 스스로를 계속 깎아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 회사에 들어와서도 한동안은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 신입으로 일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면,
✔ 아무 설명 없이 바로 실무에 투입되었거나
✔ 결과만으로 계속 평가받고 있거나
✔ 자신의 역량을 깎아내리는 사람들과 일하고 있다면
그 상황이 무조건 본인의 부족함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꼭 말해주고 싶다.
환경은 생각보다 사람을 많이 바꾼다.
나는 첫 회사에서 스스로가 정말 부족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환경이 바뀌고, 방식이 바뀌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자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함께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두 번째 회사에서도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실수하면 어떡하지’
‘내가 계속 여기서 일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꽤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불안을 대하는 방식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