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 없는 이별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저녁까지 같이 먹은 뒤,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먼저 번호를 물어봐야 하나,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머릿속으로 수없이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빠가 먼저 사진을 보내주겠다며 번호를 물어봤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망설임 없이 번호를 건넸다.
그렇게 오빠와의 연락이 시작되었다.
설레는 여행의 여운에 오빠와의 연락까지 더해져 나는 정말 행복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연락은 끊기지 않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만나보기로 했다.
집도 학교도 가까웠기에 자주 만날 수 있었고, 나는 부풀어 오른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하루 종일 연락을 기다렸고, 오빠의 메시지 한 통에 하루의 기분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했다.
해야 할 일이 있어도 오빠의 일정에 맞췄고, 내 일상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렸다.
연애에서 1순위는 나 자신이어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해서 문제가 생긴 걸까.
오빠의 연락과 관심은 점점 줄어들었고 나는 계속 뒤로 밀려나는 기분이 들었다.
취업 준비로 바쁘다는 건 이해했지만 그 외의 이유로도 자꾸 밀려나는 느낌이었다.
불안했던 나는 더 오빠를 찾았고, 그럴수록 오빠는 점점 멀어졌다.
돌이켜 보면 여행에서의 설렘을 서로만을 향한 감정이라고 착각한 채 너무 쉽게 관계를 시작했던 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렸고, 성인이 된 이후 처음 하는 연애였기에 일상이 무너질 만큼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결국 오빠는 잠수를 탔다.
처음에는 곧 답장이 오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불안이 커지자 기다리기를 멈추고 먼저 연락을 했지만 여전히 답장은 오지 않았다.
며칠이 더 지나서야 나는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받아들이기 싫어 부정하고 있던 이별을 겨우 인정하게 되었다.
잠수이별이 힘든 이유는 이별 그 자체도 있지만 끝났다는 확신 없이 혼자 남겨지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대화도, 이유도, 정리의 순간도 없이 관계가 끊기면 사람은 수많은 질문 속에 갇히게 된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 걸 그랬나.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들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혹시 연락이 다시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서 핸드폰을 확인하는 시간은 나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안다.
잠수이별은 나의 부족함이나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이 관계를 끝내는 방식의 문제였다는 것을.
갈등을 회피하려는 성향,
감정 대화를 감당하지 못하는 미성숙함,
죄책감을 피하려는 자기 보호.
솔직하게 마주하기보다 조용히 사라지는 선택은 배려가 아니라 불편함을 피하기 위한 회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침묵은 나를 향한 평가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관계의 깊이를 보여주는 방식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성인이 된 이후 나의 첫 연애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리고 이 짧은 연애 이후 나는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지고 연락을 시작하는 과정 자체가 예전보다 훨씬 조심스러워졌다.
좋아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무서워졌다.
그래서인지 이후 두 번의 짧고 가벼운 연애를 했다.
좋아하면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고, 서운한 일이 있어도 말하지 않았다.
미리 겁을 먹고 감정을 숨기면 상처를 덜 받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참아 넘긴 감정들은 결국 쌓였고 관계를 오래 이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상대를 많이 좋아하면서도 상처받기 싫다는 이유로
‘헤어지면 어쩔 수 없지’라는 태도를 바꾸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