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면서 배우는 법

적당히만 하던 나에게

by 남연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눈에 띌 만큼 열심히 하지도, 완전히 손을 놓지도 않은 채 그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으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원은 등록과 동시에 담당 멘토가 정해지고, 그 멘토와 함께 스케줄을 짜 강의를 수강하는 구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멘토가 나를 따로 불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전형적인 학원의 권유였다.


2D 디자인은 진입장벽이 낮아 취업이 쉽지 않고, 설령 취업을 하더라도 연봉이 높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대신 3D로 전향해 3D 영상 디자이너를 준비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했다.


3D 과정은 수강료도 훨씬 비쌌고, 기간도 길었다.

하지만 취업 후 받게 될 한두 달의 월급을 투자하면 연봉을 바꿀 수 있다는 말에

나는 또 한 번 흔들렸다.


부모님과 다시 상의했고,

부모님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3D 영상 디자이너를 목표로 다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3D는 2D와는 전혀 달랐다.


디자인 감각,

툴을 다루는 능력은 기본이었고

공간을 다루는 감각까지 필요했다.


2D는 눈에 보이는 면만 다루면 됐지만, 3D는 360도를 돌려 모든 방향을 설계해야 했다.

디자인 감각도, 툴 숙련도도, 공간 감각도 부족했던 나는 수업에서 점점 뒤처지기 시작했다.

진도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다른 수강생들은 뚝딱뚝딱 작업을 해내는데 나만 유독 버벅거리는 것 같아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어느 날은 강사님께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저만 이 수업이 처음인지, 다른 분들은 이미 3D 툴을 다뤄본 건 아닌지, 아니면 전공이 디자인 계열인지.


“다들 처음이에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게 정말 맞는 걸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취업은 해야 했고, 돌아갈 곳도 없었던 나는 꾸역꾸역 학원을 다녔다.


그러다 멘토님과의 소통 문제였는지, 내가 멘토님 말씀을 잘못 이해했던 건지

다음 달에 내가 듣던 수업이 열리지 않게 되었고,

한 달이라는 공백이 생겼다.


마음이 조급했던 나는 그 한 달이 취업에서 멀어지는 시간처럼 느껴져 괜히 더 화가 났다.


결국 강사님을 찾아가 상담을 부탁드렸다.

취미가 아니라 정말 이 일로 취업을 하고 싶다고, 그래서 수업을 듣지 못하는 한 달이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때 강사님은 A4 한 장을 꺼내 내가 복습해야 할 내용을 빼곡히 적어주셨다.

종이를 처음 받았을 때는 이미 배운 내용들이라 이걸 다시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시간을 버리는 건 아닐지, 괜히 일정만 꼬인 건 아닐지 화가 먼저 났다.

하지만 다음 달에 다시 그 강사님의 수업을 들어야 했기에

‘하는 척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집에서는 도저히 집중이 안 될 것 같아 아침 7시에 일어나 8시까지 도서관에 갔다.

처음 2~3일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그냥 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런데 강사님이 적어준 내용들을 하나씩 다시 해보니 분명 배웠던 것들인데 제대로 기억나는 게 거의 없었다.

혼자 해보니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책을 찾고, 인터넷을 뒤지고, 수업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만의 노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한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주말도 없이 아침부터 밤까지 도서관에 앉아 강사님이 써주신 종이에 적힌 내용을 끝내보려고 애썼다.


태어나서 내 의지로 무언가를 이렇게까지 해본 건 처음이었다.

뿌듯함과 함께 이상하게도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들은 학생 때 이렇게 공부했겠지.

그래서 지금 보상을 받는 거겠지.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을까.


후회가 들었고, 그만큼 더 열심히 했다.


그리고 한 달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결국 강사님이 A4에 적어주신 내용을 다 끝내지 못한 채,

그리고 더 줄어든 자신감을 안고 첫 수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수업이 나에 대한 누군가의 시선을 완전히 바꾸는 시작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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