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하나를 끝내기까지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을 즈음에는 3D 모델링에 재미가 붙어 있었다.
그래서 1~2분짜리 영상쯤이야 금방 만들 수 있을 거라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
영상 주제를 정하고 스토리보드를 완성하는 데에만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뻔한 제품 소개 영상은 내 단점이 너무 드러날 것 같아 피하고 싶었고,
그렇다고 스토리가 있는 영상을 만들자니 짧고 임팩트 있는 이야기를 짜는 게 너무 어려웠다.
‘스토리만 정하면 스토리보드는 금방 나오겠지’라는 생각도 완전히 틀렸다.
스토리를 잡고, 그걸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보드로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특히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어서 그 과정이 더 오래 걸렸다.
그렇게 나는 모델링은 시작도 못 한 채, 영상 주제와 스토리보드만 완성하고도 이미 반쯤 지쳐버린 상태가 됐다.
겨우 스토리보드를 끝내고 모델링에 들어갔을 때는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가리고 싶은 마음에 굳이 어려운 모델링을 잔뜩 넣었고,
캐릭터 모델링과 리깅까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욕심을 많이 부렸다.
(리깅이란 캐릭터 안에 뼈대와 관절을 만들어, 사람이 몸을 움직이듯 캐릭터도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다.)
모델링을 하면서 ‘이거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고 스토리보드를 처음부터 갈아엎을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모델링에만 매달렸다.
3D 영상 하나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길다.
먼저 어떤 영상을 만들지 정리하는 스토리보드를 만든다.
몇 초짜리 영상인지, 어떤 장면이 어떤 순서로 나오는지를 그림과 짧은 글로 미리 정해두는 단계다.
그다음 장면을 나누고, 각 장면에 무엇이 들어갈지 계획한 뒤 3D 프로그램에서 배경, 사물, 캐릭터 등을 모두 직접 만든다. 이게 바로 모델링이다.
점토로 조형물을 빚듯, 형태를 하나하나 만드는 작업이다.
모양을 만든 뒤에는 색과 재질을 입힌다.
회색 덩어리 같던 물체에 금속, 유리, 플라스틱 같은 질감과 색을 입혀주는 단계다.
그다음엔 물체가 언제, 어떻게 움직 일지를 정해 모션을 넣는다.
이제야 사진이 아니라 ‘영상’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이 과정까지 마무리해야 그제야 렌더링을 할 수 있다.
렌더링은 빛, 그림자, 색 등을 계산해 영상을 한 장 한 장의 이미지로 만드는 과정이다.
보통 포트폴리오용 영상은 1초에 약 30장의 이미지로 만들어진다.
이 이미지들을 다시 2D 영상 프로그램으로 가져와 이어 붙여 영상으로 만들고, 소리를 입힌다.
마지막으로 색 보정과 조명 등의 효과를 더한 뒤 마무리하면 우리가 보는 최종 영상이 된다.
이렇게 긴 과정을 거쳐야 영상 하나가 완성되는데,
나는 스토리보드와 모델링만으로 이미 3개월이 넘는 시간을 써버렸다.
체력도, 마음도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다.
‘이걸 평생 해야 한다고…?’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그만둘 수는 없었다.
결국 두 달 이상을 더 영상에만 매달렸다.
“영상 하나 만드는데 3개월이나 걸려?”라고 쉽게 말하던 예전의 나는, 영상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영상만 만들었다.
자는 동안에도 렌더링을 돌렸고, 아침 9시 학원 오픈 시간에 맞춰 학원 컴퓨터에도 렌더링을 걸어두었다.
그리고 오후에 다시 학원에 가서 결과물을 확인했다.
그렇게 거의 5~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2분 남짓한 영상 하나가 완성됐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 하나로 바로 취업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 영상으로 다시 영상 소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자기소개서를 써야 했다.
그제야 정말 ‘취업 준비’가 시작된 느낌이 들었다.
영상을 만들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작품을 봤다. 말도 안 되게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취업이 쉽지 않겠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현실은 더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그래도 가고 싶은 회사’에만 지원했지만, 어디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 뒤로는 회사 규모도 따지지 않고, ‘3D 디자이너’라는 공고에는 전부 지원했다.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라면 조건도 보지 않고 넣었다.
그러자 조금씩 면접을 보고 싶다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