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데 없는 곳에서

by 남연

돌아보니 나의 일은 이름이나 얼굴을 걸고 이루어졌다. 어쩌다보니 그랬다.


이름을 걸고는 원고를 써서 냈다. 바이라인by-line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작업물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감사한 직업을 누린 덕이다. 나의 원고들은 에디터 최남연, 글 최남연, 작성 최남연 등을 붙이고 세상에 나갔다.


얼굴을 걸고서는 사람들과 만났다. 대학생 시절 파트 타임으로 각종 매장에서 일할 때, 공유 오피스 건물의 커뮤니티 데스크에 있을 때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며 주문을 하거나 질문을 했다. 이때 나는 (이름보다는) 얼굴로 등장했고 기억됐다.


이름으로 얼굴로 일해야 하는 실명名제 실면面제는 많은 경우 부담이었다. 멋모르고 한 실수가 곧바로 내 이름에 얼굴에 흠을 낼까 무섭기도 했다. 그렇다고 써 볼 만한 다른 수가 있는 건 또 아니어서, 처음엔 아주 본능적으로 이렇게 생각한 것 같다. 일단 최대한 해내자. 최대한 해내서 나의 이름과 얼굴을 내 손으로 지키자. 부끄러울 일 없게 하자.


맡았다면 내가 만족하는 수준까지 한다. 이로써 이름을 얼굴을 나아가 품위를 적어도 유지하고 되도록 향상한다. 가명이나 가면 뒤로 숨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자리에 덜컥 앉아버린 내가 찾은 방책이자 지금까지도 고수하는 기준이다.


물론 몇 년이 되었어도 쉽지 않다. 이름으로 얼굴로 일하기는 정멜멜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익숙하게 어렵’다. 대신 덕분에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지키기 위해 일하는 맛을 알아 버렸으니. 자기 기준을 준수하고 갱신하며 나아가는 법을 배웠으니. 앞으로도 숨을 데 없는 곳에서 이렇게 일하고 싶다. ㅤ

작가의 이전글뽈뽈대는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