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하기에 가시가 있다.
영국장미 데이비드 오스틴 등
'장미'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는 생떽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떠오른다. 약간 까칠하면서도 당당히 어린왕자에게 나를 돌봐줘야 한다고 요청했던 장미. 어린왕자는 지구에 내려와 수많은 장미를 보며 장미가 이렇게나 흔한 것이었다니 하며 실망하다가 그래도 소행성 B612에서 살고 있는 나의 장미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고 독보적인 '장미'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둘이 함께 한 시간과 추억이 있으므로.
그들은 길들여진 사이이므로.
나에게도 장미가 있다.
마당에 검은 울타리 옆으로 나란히 화단을 만들었다.
5월부터 가을까지는 붉게, 분홍으로 물들며 검정색 울타리와 강렬한 색채 대비를 이루리라. 그 수많은 장미꽃이 피어나면 얼마나 풍성하고 뜨거우며 정열적일까 그려보았다.
몇 주는 내가 샀고, 나머지는 선물을 받았다. 장미 공부를 시작했고, 장미는 병에 잘 걸리며, 벌레들이 잎을 자주 갉아먹는다는 것, 그래서 천연약을 만들어 뿌리라는 내용을 주로 접했다.
들뜬 마음으로 장미를 들여다보며 장미꽃을 피운 날은 사진을 찍고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또 다른 데이비드 오스틴
그러나 영양제를 뿌려주고, 천연약을 뿌려주며 나 나름 한다고는 했는데 계속 내리는 비에 흑점병이 퍼져버리고 말았다. 잎에 검은색 점이 좀비처럼 창궐한 것이다.
한 명이 좀비가 되면 10명이 좀비가 되고,
10명이 다시 100명의 좀비가 되는
이상한 곱하기였다.
영양제까지 뿌렸는데 왜 이럴까 싶어 유튜브에서 영상을 다시 찾아보니 나의 대처법은 언발에 얼음 붓는 격이었다고나 할까.
2시간을 쪼그리고 앉아 바닥에 떨어진 병든 잎을 싹 모아 다른 곳에 버리고, 매달려 있는 병든 잎을 다 떼었다. 앙상한 가지만 남아 버렸다. 가슴이 너무나 쓰라렸다.
앙상해진 데이비드 오스틴습하지 말라고 화단의 소나무 바크를 조금씩 치워주었다. 천연약도 만들어 뿌리고 나니 손에 남은 건 긁힌 자국과 가시에 찔린 상처. 무엇보다 잔가시가 손에 박힌 것 같은데 긴가민가 신경은 쓰이고 빠지지는 않고 대략 난감이었다.
장미의 '가시'라고 하면 굵다란 줄기에 크게 달린 가시만 떠올렸는데, 장미에는 그런 가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옆으로 퍼진 얇디얇은 가지까지 모두 잔가시 투성이였다.
그런데 이렇게나 아름다운 장미를 나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병도 장미를 좋아하고, 별레도 장미를 좋아한다.
(벌레에게 잡아먹힌 나의 장미잎도 얼마나 많더란 말인가.)
꽃을 제외한 모든 신체에 가시를 장착한 장미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온몸에 가시를 덮은 것이다.
화려함 속에 숨긴 그의 나약함은 그를 만나고, 그를 겪어보고, 그를 만져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다. 그래서 손은 아팠지만 나는 장미가 밉지 않았다.
쉽게 화내는 사람, 곧 돌변해서 공격하는 사람. 이들도 장미였지 않을까.
나는 그들까지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드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