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잘 두면 꽃이 열린다.

by 유진

새로 거처를 옮기고 진심으로 시작한 가드닝


내 집에서 700미터 거리에 꽃마니아 선생님이 사신다.

700평이 되는 집에 기생초, 구절초, 장미, 메발톱, 클레마티스, 에키네시아, 목수국, 장미, 다육이

안개꽃, 댑싸리, 천년초, 스피아민트 등의 허브들, 메리골드, 꽃범의 꼬리, 채송화 등등 정말 많은 꽃을 가꾸신다. 거기에 텃밭과 유실수, 소나무까지.


글 쓰고 싶다던, 오래 묵은 문학 소녀 나. 식물 이름을 몰라 부끄럽기 짝이 없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꽃 이름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물론 선생님이 다섯개를 알려주시면 하나만 외울까 말까 한다. 마음 속으로 계속 되뇌어도 왜 손바닥 위 모래알처럼 쓰윽 사라져 버리는 걸까.)

선생님의 꽃들


어쨌든 올 봄에 선생님께서 주신 해바리기 씨앗을 심었다.

미니 텃밭 옆 울타리는 옆집과 경계이기 때문에 키 큰 해바라기가 좀 가려주길 바랐다.


그런데 이 작은 개미만한 씨앗이 언제 2미터가 넘는 해바라기가 되는 걸까. 그 곁을 지나갈 때마다 의구심이 살짝 든 건 사실이다.


처음에는 떡잎이 나왔다. 새끼손톱만한 떡잎이 쑤욱 나왔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것은 잡초 싹이고 이것은 해바라기 떡잎이라는 것을.


그런데 해바라기의 성장은 생각보다 더녔다. 이 말을 듣고 꽃차 선생님께서 10센티 이상 자란 해바라기 모종을 나눠주셨다. 그때부터 모종과 씨앗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모아둔 에너지가 응축되고 응축되어 임계점이 지나면 폭발하는 것처럼 그렇게 해바라기 줄기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쑤~욱, 또 쑤~ 욱.

계단을 점프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만개한 해바라기들


우리집 애는 왜 이렇게 더딘 거냐고 아우성을 쳤는데 그 위용을 드러내 주었다.



한 두 개를 잘라 집 안으로 들이니 그 선명한 태양빛 한 두 개만으로도 존재감이 공간을 압도한다.


지금은 씨앗을 맺으려고 갈색으로 시들고 있는 꽃과 이파리를 보면 보기에는 아름답지 않아도 이게 또 자연의 섭리구나, 이 씨앗을 받아 내년에 또 심으면 내 마음을 뜨겁게 했던 그 샛노랑을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직접 키우기 전에는 몰랐던 달콤한 해바라기의 향을 다시 맡을 수 있겠지 싶다.


사람을 잘 두면 꽃이 열린다.

정원에도, 내 마음에도

"해바라기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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