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전쟁

아토피와 전쟁에 대하여

by 유진

'총알배송'이 경쟁인 시대다. 며칠 걸리던 택배가 1박 2일이면 도착하고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당일배송, 새벽배송에 총알배송까지 해준단다. 총알은 초속 900m라는데 이제는 그 총알처럼 공기를 찢어내고, 쉼 쉴 틈 없이 달려 고객의 문 앞에 당도하겠단다. 마트에서는 '핵폭탄 세일'을 한다. 한 방 터지면 도시가 날아가고 사람은 그 열기에 녹아 사라져 버리는 핵폭탄이건만, 물건값 조금 깎아주는 셈 치고는 '핵폭탄급'으로 과장이 심하다.


오늘 3일의 휴일을 보내고 아이들은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갔다. 작은애는 오프라인 수업, 큰애는 온라인 수업을 하는 아침, 고요하고 평화롭게 나도 일상을 시작한다. 그런데 내년이면 고3이 되는 큰애를 지켜보니 이 아이도 내년에는 '입시 전쟁' 속으로 들어가는 걸까 싶다. 니 편 내 편 갈라 서로 많이 죽이는 게 전쟁인데, 아이들 입시에 '전쟁'이라니 뭔가 좀 섬뜩하고 아찔하다. 니가 죽어야 내가 산다라.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사용하는 군사용어가 이렇게나 많다. '저격수', 지원사격', '복병', '속도전' 등등 군사문화는 우리 생활에 뿌리 깊게 퍼져있다. 문학을 전공한 나는 '하나의 언어는 하나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눈이 많이 오는 곳에 사는 이누이트에게는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수십 개나 된다. 이들에게 눈은 우리보다 풍부하고 세밀한 세계일 것이다.) 어쨌든 평소에 군사용어를 지양하고자 하지만, 나에게도 '전쟁'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상대가 있었다. 바로 '아토피'이다.

서울에서 살 때 다녔던 남양주 주말농장

"왜 양평에 사세요? 왜 그렇게 자연을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면 그 이유의 5할은 작은애의 아토피 때문이다. 태어난 지 다섯 달밖에 안 된 조그만 아이 몸에서 붉게 피어오르는 반점을 보았을 때, 영문 모르던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피가 날 때까지 피부를 긁어댔고, 나는 새벽에도 수시로 깨어 로션을 발라주었다. 처음에는 누가 적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니 적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트의 과자나 음료는 분명한 적이었다. 이들이 몸에 들어가면 아토피는 병력을 지원받아 강렬해졌다. 집안의 먼지, 합성섬유, 독한 합성 세제 등도 지원사격을 했다. 나는 집안을 샅샅이 청소하고, 초록마을이나 한살림, 생협 등에서 세제를 구입하고 옷, 침구류는 면 제품을 구매했다.

그래도 고전을 면치 못한 나는 구원병을 찾기에 급급했다. 인터넷을 뒤져 루이보스티, 녹차 목욕 등을 했고, 미역귀 목욕의 선방으로 아토피를 조금은 잠재웠다. 알로에를 사용했지만, 아토피가 승기를 잡아 아이 몸을 잠식하면 나는 한의원, 대학병원에 달려갔다. 지리한 전쟁은 이어졌고, 나는 '이렇게나 절망적인 질병이 있을 수 있냐'며 새벽에 혼자 일어나 울며 무력감과 좌절감에 허우적댔다.


대증치료가 아닌 근본적인 치료를 해야 했다. 체질을 바꾸기로 결심하니 결론은 '음식'으로 향했다. '자그마한 벌레라도 죽인다면 사람 몸에도 이로울 것이 없다'라고 생각했다. 유기농과 무농약 식재료를 고집했고, 엄마로부터 유별나다는 비난을 끊임없이 받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흙'의 생명력과 그 '흙'이 주는 회복에 대한 기사를 보았으며 어슴프레 '자연'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싹터 올랐다. 남양주 주말농장을 다니며 이런 마음은 더욱 힘을 얻었다. 진정한 승리의 길로 들어서려는 순간이었음을 이때는 알지 못했다.


인도 자이살메르 사막에서


소똥, 돼지똥, 염소똥, 닭똥, 사람똥, 똥의 전시회가 상연되는 곳, 거리거리마다 쓰레기로 넘쳐나는 곳. 2012년 인도이다. 72일의 일정으로 아이 둘과 인도 배낭여행을 갔다. 인도 중부, 북부, 남부를 돌며 눈에 차고 넘치는 똥과 쓰레기를 보았건만, 작은애 피부에 아토피가 사라졌다. 분명히 우리 '눈'에는 너무나 더러운 인도인데, 확실히 우리 눈에는 너무나 '깨끗해 보이는' 서울인데 신기했다. '자연적인' 더러움과 '인공적인' 더러움(그러나 겉으로는 깨끗해 보임)의 차이라는 답이 도출되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양평'으로 내려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삶을 시작했다. 인공적인 더러움을 제거하고자 다양한 병법을 활용했고, 많이 울었으며 좌절했던 세월이다. 하지만 양평으로 온 이후 아토피는 급격하게 퇴각했으며, 이제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며칠 전에 작은애가 식사를 하다 뜬금없이 물었다. "엄마, 나 이제 아토피 완전히 나은 거지?" 나는 답했다. "그렇지. 하지만 앞으로도 조심해야지."


아토피를 전쟁에 빗대어 적어보았지만, 실상 이 질병은 우리에게 축복이기도 했다. 아토피가 있어 우리는 해로운 대상을 5G급 속도로 알아챘다. 몸에 독소가 쌓이면 큰병이 되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 독을 바로 인지했으니 아토피는 우리에게 리트머스 시험지였던 셈이다. 게다가 새로운 삶을 찾아, 다른 삶의 방식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감사할 수도 있겠다.


이제는 아토피와 진정한 화해를 하고 싶다.

사실 너는 적이 아니라 길잡이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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