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탄생과 웰다잉(well-dying)

by 유진

아침 7시, 배가 살살 아파온다. '아침부터 장 운동이 참 활발하네.' 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 뚜껑을 열고 앉아 활발한 대장운동의 부산물을 몸 밖으로 밀어내려고 힘을 준다. 끙, 끙, 끙. 그런데 이상하다. 붉은 피가 묻어 나온다. 아뿔싸, 급히 전화기를 찾아 병원에 전화를 걸어 사정 이야기를 했다. "화장실 볼 일인 줄 알고 힘을 줬는데 피가 나와요."


당장 오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가까이 사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병원 가야 하는데 큰애 좀 봐줘요." 부리나케 달려온 엄마에게 큰아이를 맡기고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병원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침상에 누우니 8시다. 긴장한 나를 보고 간호사가 입을 열었다.


"벌써 8센티가 열려 있어요. 아직 힘 주시면 안 돼요. 의사 선생님이 도착하셔야 하니까." 간호사의 눈에서 부탁하는 간절한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조금 후에 의사 선생님이 가운을 걸치며 뛰어 들어왔다. 나 때문에 갑자기 조기 출근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급했으랴. 의사의 허락이 떨어지자 본격 힘주기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더 세게 힘을 주었다. 끄응, 끄응, 끄~응. 정말이다. 세 번이었다. 세 번 힘을 주고 8시 24분에, 3.56키로의 적당한 몸무게와 완벽한 구형의 동글동글한 두상을 한 아이, 둘째 아이가 탄생했다.


이렇게 나는 오늘 아침, 마냥 과거에 젖어들고 있다. 오늘 생일을 맞이한 둘째 아이는 어제와 별 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7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나간 아이는 자신이 태어났을 순간에 학교로 걸어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50센티짜리였던 아이, 딸처럼 살갑게 애교를 부리고, 나에게 뽀뽀를 하며, 나를 안아주던 아이는 이제 다리에 거뭇한 털이 자라는 170센티가 넘는 남자가 되었다.


KakaoTalk_20211013_095149649.jpg 밴쿠버의 한 호수에서 작은아이


소중한 이의 탄생은 이렇게 생생히 기억난다. 집, 자동차는 시간의 힘을 이길 수 없어 감가상각 되지만 아름다운 이의 탄생은 시간을 초월해 그때의 숨결과 분위기, 향기까지 세포 속에 각인된다. 이렇게 가치 있는 탄생이건만 그 반대편 끝자락 실을 붙잡고 있는 죽음은 왠지 추하며, 피하고 싶어진다.



양평에 와서 많은 것들의 죽음을 보았다. 요즘은 때를 보낸 매미가 바닥에 떨어져 바둥거리며 죽어가고 있다. 안간힘을 쓰는 매미를 보면 왠지 쓸쓸하고 애처로워 바라보기가 힘들다. 나는 죽음도 아름답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꽃이 지는 순간, 환상적이고 황홀한 소멸을 선사하는 벚꽃을 좋아한다. 그에 비해 목련은 지나치게 넓은 꽃잎을 허공에 아슬아슬 매달고 있다가 바닥에 어수선하게 꽃잎을 떨군다. 순백의 하얗던 꽃잎은 시커먼 검은색으로 변해 뭉개진다. '왜 사라질 때에도 아름다울 수 없는가.'라고 나는 목련을 쳐다본 뒤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사를 와서 새로운 길을 다니며 울타리에 장미 몇 그루가 심긴 풍경을 보았다. 5월이 되니 붉은 장미가 한꺼번에 피어올랐다. 그 순간 그 길에서 나는 미(美)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 장미가 시드는 순간, 그 무리 진 장미가 찰나에 무너졌다. 노화된 피부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지듯 보기 흉한 소멸이었다.


현대인에게 안티에이징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나도 늙는 게 싫어서 요리조리 얼굴을 살펴본다. 인스타에 뜨는 시술 광고에 눈이 가기도 한다. 그렇게 안티가 되어버린 죽음과 노화에게 나는 'beautiful'까지 바라고 있으니, 죽음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씌우고 있나 보다.



KakaoTalk_20211013_091654418.jpg 2015년 히말라야에서 두 아들


2015년 네팔의 산맥을 오르며, 4000미터에 자리한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당연하게 가 닿을 거라고 믿었다. 이렇게 철저히 준비하고, 열망했는데 오르지 못할 리 있겠는가. 그러나 3000미터 지점에서 밤새 내린 폭설 때문에 돌아서 내려올 때, '인생'은 정말 '예측불허구나' 절감했다. 그러니 그 끝이 아름다울지 아닐지 어떻게 알겠는가. 윤동주 시인의 말처럼 '나한테 주어진 길을' 한 발씩 걸어가는 수밖에.


단풍이 붉게 물드는 가을, 오늘 태어난 작은애도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찬찬히 걸어가며 잘 갈무리하는 삶을 살기를, well-dying 하기를 바라게 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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