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雪器)의 무덤

페르시안 고양이와의 만남과 이별

by 유진

눈처럼 하얀 고양이가 갖고 싶었다.내 생애 첫 고양이였던 럭키와 그의 아들 하양이와는 다른 눈처럼 하얀 고양이가.


그런 설기는 작년 4월 15일 내 생일에 우리집에 오게 되었다. 나의 생을 축하하는 선물처럼 그렇게.


'눈을 담은 그릇'이라는 의미로 설기라고 이름 지어주었다.

목욕도 잘 하고, 간식도 잘 먹고, 우리집 강아지 루이와도 잘 어울리는 매력을 물질화시킨다면 바로 이런 생명체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설기.


나는 너무나 설기에게 빠져들었다.


코 자고 있는 설기

그런데 그런 설기는 자기를 사랑하게 해 놓고

몇 달 만에 너무 먼 곳으로 가버렸다.


설기가 치사율이 거의 100프로라는 복막염에 걸려 숨을 유지하며 삶을 이어가다 결국 나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을 때


나는 오열했다.


아침이 되자 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설기 죽었다."라는 내 목소리에

물기가 서려 있었다고 아들은 훗날 말해주었다.


설기를 화장해서 그의 뼛가루를 유골함에 보관하며 약속했다. '마당 있는 집으로 가면 너를 꼭 좋은 곳에 묻어줄게.'


그리고 올 봄 드디어 마당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설기의 유골함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나를 욕했다.

너의 마음이 이렇게 얄팍하다고, 설기와 약속했는데 왜 기억을 못 하냐고!!


이삿짐을 싸면서 고이 두었던 유골함을 급히 어딘가에 넣어두고는 이사 온 뒤 뒤죽박죽 물건 위치가 바뀌어버려서


......

이런 것은 모두 핑계다.

그저 나는 설기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설기의 유골함이 나타나 주었다.


가는잎사계국화

흙으로 돌아가 자연의 일부로 되살아나라고 가는잎사계국화 아래 설기를 묻어주었다.


우리집 화단에서 가장 시선이 많이 가는 곳.

넓은 산쪽으로 트여 있어 광활함을 느낄 수 있는 곳.

이곳이 설기의 무덤이다.


사랑의 설기.


나에게 '사랑'을 알려준

눈보다 더 하얀

설기.


내 곁에서 오래도록.


안녕, 설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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