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연설 대회

-곤충, 벌레와의 동거

by 유진

여기는 양평 서종의 숲 속 마을, 온갖 곤충들이 자기 자랑을 하며 떠드는데, 길이는 한 뼘에, 마디마다 다리가 한 쌍씩 나온 기나긴 벌레가 몸을 흔들며 무리 한가운데로 떡 하니 기어 온다.


"어허,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보기에 흉측해서 사람들이 나를 보면 도망가기 바쁘다네. 게다가 이 꼬리 여기 끝에 독이 있으니 나를 건드릴 수 있겠는가? 여기 사는 저 여자가 지난번에 내 조카를 전기채로 잡아 죽였는데, 내 눈물이 솟아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네. 그런데 그 여자가 또 이상한 짓을 하지 않나 그래? 거 뭐시기냐, 손에 들고 다니는 네모난 기계 거기서 무슨 퇴치법 이런 걸 찾더니만 계피를 갖다 놨네 그려. 우습기 짝이 없지 뭔가. 그깟 나무토막 몇 개로 우리를 쫓을 수 있겠는가? 내가 여기 이렇게 떡~ 버티고 있는데. 이 숲 속의 최강자는 바로 우리 지네일세!"


이 말을 가만히 듣던 지네 친척 노래기가 몸을 비비 꼬며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는 듯 재빨리 발을 놀리며 무리 가운데로 치고 나와 입을 연다.


"이봐, 어리석은 지네야.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나? 전쟁하면 인해전술 아니겠는가? 쪽수로 밀어붙이면 당할 자가 없다네. 올여름 어떠했나? 여기 산 좋고 물 좋은 양평에 비가 주르륵주르륵 내리니 얼마나 금상첨화였나.날은 따땃하고 물기는 촉촉하니 살기 딱 좋았다네. 셀 수 없이 창궐한 우리 노래기가 양평을 접수하는 모습, 두 눈 뜨고 보지 못했단 말인가. 여기 사는 저 여자도 우리를 보고 화들짝 놀라더니 건들지를 못 했네. 좀 귀찮았던 게 저 집 고양이들인데, 그 놈들이 무엄하게도 우리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면서 내 친구 몇을 죽이기는 했지. 또 소문으로 듣자 하니 윗마을 어떤 놈이 해충 퇴치제를 뿌려서 우리를 몰살시키려 했다던데 그런다고 사라질 우리 노래기가 아닐세!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소. 내년 여름 또다시 양평은 우리가 접수한다!"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노래기를 흘겨보며,

"에헴, 졸려서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구나~" 하고 거미가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긴 다리를 쭉쭉 뻗으며 몇 걸음만에 무리 한가운데로 나온 거미가 긴 다리를 들어 올려 입을 한번 쓰윽 닦으며 말 하기를


"노래기야, 어리석기로는 너를 당할 자가 없겠구나. 지금이 몇 세기인 줄은 알고 떠드느냐? 인해전술이라니 호랑이가 담배 뻑뻑 피던 시절 이야기지. 앞으로의 전쟁은 강력한 신무기들의 전시장이 될 터인데 쪽수로 밀어붙인다고 통할 리가 있겠느냐? 한 방이면 사라져 없어져 버릴 것을, 쯧쯧. 시대의 변화를 알아야 살아남는 법이로다! 나 이 거미로 말할 것 같으면 아직도 나를 보고 슬슬 피하는 인간들이 있기는 하다만, 반짝이는 칼라에 길쭉하고 늘씬한 다리를 보고 신기하다고 호들갑을 떠는 인간들도 있다네. 게다가 비라도 내리면 거미줄에 매달린 빗방울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람들은 그걸 보고 예쁘다고 난리를 떨지. 어디 그뿐인가. 싫어하면 없애고, 예쁘고 도움되면 곁에 두고 지켜보는 것이 인간의 성정(性情)인지라, 자기들이 싫어하는 날벌레를 잡아주니 인간들은 나를 봐도 죽이지를 않는다네. 지네나 노래기 너희들은 무서운 외모로 겁을 주고는 살겠다고 도망가기 바쁘지만 나는 저 여자네 집을 기어 다녀도, 이렇게 나무에 거미줄을 쳐도 태평천하인 것이여. 천년만년 이 숲 속의 주인은 나, 이 거미일 테니 두고 보라구. 내 이 백만불 짜리 다리를 걸고 맹세함세!"


가슴팍을 앞으로 내밀며 자랑스럽게 좌중을 훑어보는 거미의 입에 웃음기가 서린다. 지네와 노래기는 눈 둘 곳을 못 찾고 고개를 푹 숙이며 앉아있고, 사마귀는 긴 다리로 박수를 치며 야단법석이다. 이때 날아가던 검은제비꼬리나비가 사뿐히 내려앉으며 하는 말이,


"거 참 살겠다고 야단법석을 부리는 너희들을 보자니 지나가다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구나. 나 검은제비꼬리나비는 나비 중의 왕이다. 이 우아하고 신비로운 청색 빛이 도는 검은 날개 좀 보려무나. 노란나비, 흰나비가 나에게 비할쏘냐. 또 사람들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멀리서 날아도 그저 좋아서 웃음을 짓는다. 내가 꽃에 내려앉아도, 텃밭에 내려앉아도 꿀을 먹는다, 수정을 시켜준다 하며 내가 하는 대로 그냥 놔두니 나는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너희들처럼 죽을까 봐 발발 떨지 않는단다. 외모지상주의라고 들어보았느냐? 인간이란 못생긴 걸 싫어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걸 좋아하는 족속인지라 여기 사는 저 여자도 나만 보면 좋아서 동영상에 담는다, 사진을 찍는다 얼마나 분주하냐. 한 번은 나 보고 '행운의 징표' 같다며 친구랑 떠드는 모습도 보았느니라. 억울해도 어쩌겠느냐. 지금 시대가 그러한 것을. 나는 예쁘게 태어난 덕에 나는 아무 위험 없이 살고 있으니, 나야말로 이 숲 속의 제왕인 것이다!"


나비가 크게 날갯짓을 하며 어깨를 으쓱한다.


이때 이들의 말을 집 안에서 듣던 저 여자- 지네를 보고 기겁을 하고, 노래기를 보면 깜짝 놀라고, 거미를 보면 겁을 먹었다 안 먹었다 하고, 나비를 보면 함박웃음을 짓던 저 여자-가 문을 열고 나오며 하는 말이


"알았다, 알았어. 너네도 살고 나도 살고 다 같이 사는데, 제발 집에는 들어오지 말아 다오. 응?"


애걸복걸을 하는 차에, 사람 기척에 놀란 지네, 노래기는 벌써 숲 속으로 후다닥 사라지고, 거미는 나무 꼭대기에 몸을 숨긴다. 그저 나비 한 마리만 허공 중에 수를 놓으며 멀리 날아갈 뿐이다. 살랑살랑, 팔랑팔랑.


양평의 하루는 오늘도 이렇게 시끌벅적하구나.


집앞의 검은제비꼬리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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