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랫마을 숲 속 벌레들이 연설 대회를 열었다는데, 그 쪼고만 것들도 하는 대회를 우리라고 못 할까요? 나도 할 말이 많다고요."
1미터가 넘는 키에 엷은 갈색털을 한 고라니 부인이 모여 있는 동물들을 둘러보며 말문을 연다. 눈에서 눈물이 아롱져 떨어질 듯하다. 고라니 부인의 말에 너구리 김 씨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연다.
"맞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각자도생 할 게 아니라 우리도 모여서 머리를 굴려야 할 거 아닙니까. 거, 벌레들은 조그마니까 사람 눈에도 덜 띄고, 또 번식은 얼마나 많이 합니까? 일 년이면 가족이 몇 배, 몇 십배로 늘어나는데 어디 우리야 그럴 수 있습니까? 우리는 임신하고 애 독립시키는 데 1년이 걸립니다. 1년이!"
너구리 김 씨가 옆에 앉은 그의 부인을 끌어안으며 힘주어 말했다. 고라니 부인은 이제 아예 눈물을 쏟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말을 잇는다.
"어제 우리 애한테 있었던 일 들으셨죠? 우리 애가 배가 고파 풀 뜯으러 가다가 차에 치여 뒷다리를 못 쓰게 됐어요. 기어 기어 겨우 집에 돌아왔는데 지금 정신을 잃어서는..."
어깨를 들썩이며 토해내는 고라니 부인의 울음소리가 하늘을 가르며 창공으로 흩어진다. 누렇게털이 바랜 토끼 할머니가 껑충 뛰어 고라니 부인에게 달려가 그의 등을 쓸어준다.
"나도 지난주에 황천길 갈 뻔했다우. 여기 중미산 산자락이 얼마나 좋습니까? 첩첩이 산이요. 골골이 물이요. 나무는 또 좀 많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풀도 지천으로 널렸으니 고개 돌려 저 풀 먹고 고개 돌려 이 풀 먹고 잘 먹고 잘 살기가 이리 쉽더이다. 그런데 지난주에 아랫마을에 새 토끼가 이사 왔다길래 마실 간다고 도로를 건너다가 저 아랫마을 숲 속에 사는 여자 있죠. 무릎 튀어나온 회색 추리닝에 검은 모자 달린 옷 입고 다니는 그 여자요. 그 여자 차에 치일 뻔했답니다."
토끼 할머니의 말에 너구리 김 씨가 깜짝 놀라 펄쩍 튀어 오르며 하는 말이,
"그 여자 압니다! 양평읍 갈 때 자주 이 중미산을 넘어가더군요. 저도 몇 주전에 그 여자 차에 치일 뻔했습니다. 아니, 자기도 깜짝 놀랐겠지만 저는 오죽했겠습니까. 자기는 단단한 차 갑옷이 있지만 나는 맨몸이요. 저랑 나랑 부딪치면 저는 차 청소나 수리만 하면 그만이지만, 나는 두개골이 깨지고 눈알이 튀어나가고, 내장이 다 쏟아지고, 한 순간에 가족이며 친구며 다 잃고 저승길 갈 텐데. 어휴, 무서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너구리 김 씨가 발로 땅을 꽝꽝 차며 두 눈을 부라리는데, 한 구석에서 그림차처럼 서 있던 청년 멧돼지가 토끼 할머니에게 눈길을 주며 묻는다.
"새로 온 토끼는 왜 이사 온 거랍니까?"
"살던 산이 없어졌다우. 산 파고 집 짓고, 산 헐고 집 짓고 허구한 날 공사니 난민 되는 거야 늘상 있는 일이죠."
토끼 할머니의 눈시울도 어느새 붉게 물든다
"역시.,"
청년 멧돼지는 발로 흙을 툭툭 차며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고개를 쳐들며 말을 한다.
"나보고 농작물 파 먹는다고 욕 하는 거 압니다. 그런데 산마다 길이 뚫리고 집이 들어서니 우리가 편히 다닐 길이 있기를 합니까? 먹을 것이 많기를 합니까? 내가 여기저기 쏘다니니 잘 알죠. 내 눈으로 본 도로 위 시체만 수십 구입니다. 여기 있는 동물뿐입니까? 길냥이, 뱀, 두꺼비까지 죽어나갑니다. 사람들은 살 곳을 얻고 우리는 살 곳을 잃습니다. 사람들은 다닐 길을 얻지만 우리는 걸을 길이 없어집니다."
말을 하는 청년 멧돼지의 눈은 형형하고,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양평에는 생태도로도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빛 좋은 개살구라고 듣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물 좋고 산 좋은 양평에, 사람 살기 좋은 이 양평에, 원래 살던 우리는 이 꼴을 하고 살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이제는 더 이상 가만 있을 수 없습니다. 단결된 힘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청년 멧돼지의 외침에 고라니 부인, 너구리 김 씨와 그의 아내, 토끼 할머니 및 좌중들이 환호를 하며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친다.
같은 시각 아랫마을 숲 속에 사는 여자는 친구와 통화를 하며,
"나 얼마 전에 중미산 지나다가 너구리랑 토끼 로드킬 할 뻔했잖아.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그러니까. 여기 로드킬 당하는 동물이 얼마나 많다고. 뭔 방법이 없겠니?"